무대 위로 소환된 '돌봄의 순환'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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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예술대상 후보 오른 연극 '정희정'
18~27일 광안리 '어댑터씨어터 2관'
굴레처럼 순환하는 여성의 돌봄 주목
배우 두 명이 모녀 자리 오가며 연기


여성이 주로 감당해 온 돌봄의 순환 구조에 주목한 연극 '정희정' 장면. 어댑터씨어터 제공 여성이 주로 감당해 온 돌봄의 순환 구조에 주목한 연극 '정희정' 장면. 어댑터씨어터 제공

돌봄 받는 처지에서 돌봄 하는 주체가 되었다가 다시 돌봄 받는 몸으로…. 출산과 육아, 병간호, 노년기 요양에 이르기까지 주로 여성이 감당해 온 ‘돌봄의 순환 구조’가 무대 위로 소환된다. 오는 18일부터 부산 수영구 어댑터씨어터 2관에서 선보이는 연극 ‘정희정’이 그 무대다.

작품은 특정 인물에 국한되지 않은 보편적인 여성을 상징하는 ‘정희’와 ‘희정’ 2명을 무대 위에 세운다. 이들은 젊은 시절 자녀를 양육하고, 자녀가 독립한 이후에는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며,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양육했던 자녀나 낯선 타인으로부터 돌봄을 받는 ‘돌봄의 순환구조’를 드러내 보인다. 작품 타이틀이 ‘정희’와 ‘희정’이 중첩되는 ‘정희정’인 이유이기도 하다.

연극 ‘정희정’은 윤혜숙 연출을 중심으로 배우 이유주와 허진이 직접 구성에 참여한 공동창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작품은 강문영, 성애연, 윤주연, 이수가, 임가연 등 다섯 명의 인터뷰이가 실제 풀어놓은 간병, 요양 등 구체적인 돌봄 경험을 뼈대로 사실성을 강화했다.

오는 18일부터 27일까지 부산 수영구 어댑터씨어터 2관에서 선보이는 연극 '정희정' 공연 모습. 어댑터씨어터 제공 오는 18일부터 27일까지 부산 수영구 어댑터씨어터 2관에서 선보이는 연극 '정희정' 공연 모습. 어댑터씨어터 제공

무대에 서는 두 배우 ‘정희’와 ‘희정’이 고정된 배역 없이 엄마와 딸, 즉 모녀 역할을 서로 바꾸어 가며 연기하게 한 것에도 이런 ‘돌봄의 도돌이표’를 보여주려는 연출 의도가 반영됐다. 또 30대 배우에게 노인을 상징하는 오브제인 인형을 직접 입고 연기하게 함으로써, 한 사람의 몸에 돌봄의 의미가 중첩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윤혜숙 연출은 “ 돌봄이 돌고 돌며, ‘돌봄 받는 몸’과 ‘돌봄 하는 몸’이 내 몸 안에 다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작품은 이를 통해 여성의 돌봄이 단지 가족의 책임이나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와 문화적 규범이 만들어 놓은 자리임을 드러낸다. 그 안에는 계급, 생명윤리, 복지 정책, 여성 노동, 젠더 등이 복합적 요소가 맞물리듯이 얽혀 있다. ‘정희정’은 이 복잡한 문제를 직접적인 주장보다는 섬세한 시선, 시적 장면, 신체와 오브제의 이미지 언어를 통해 관객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윤혜숙 연출은 “관객들의 마음이 여러 번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요양원 장면에서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딸의 입장이었다가 또 할머니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그다음에는 그 할머니를 돌보는 요양보호사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는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오는 18~27일 부산 수영구 어댑터씨어터 2관 무대에 오르는 연극 '정희정' 포스터. 어댑터씨어터 제공 오는 18~27일 부산 수영구 어댑터씨어터 2관 무대에 오르는 연극 '정희정' 포스터. 어댑터씨어터 제공

작품은 2023년 제1회 서울예술상 연극부문 우수상 수상과 그해 열린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후보에 오른 화제작이다. 지난해 제2회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 비팜) 쇼케이스에 공식 초청됐다.

이번 부산 공연은 창작 중심 소극장 어댑터씨어터와 페미니즘 관점의 작품을 꾸준히 올린 서울 극단 페미씨어터가 공동으로 마련한 프로젝트다. 27일까지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의 어댑터씨어터 2관에서 만날 수 있다.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한글 자막 해설이 제공된다. 공연 시간은 80분이고 만 12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네이버와 어댑터씨어터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다.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3시·6시, 일요일 오후 3시. 월요일에는 공연이 없다. 오는 20일(일) 공연 뒤에는 윤혜숙 연출이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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