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 Bye? 국장 Buy?… 혼돈 휩싸인 서학개미 [비즈&피플]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미국 증시 변동성에 투자자 갈팡질팡

관세 리스크에 빨리 탈출한 투자자
미중 합의로 기술주 반등하자 ‘후회’
반등장에 공격적으로 올라탄 이들
원달러 환율 하락에 수익률 뚝 ‘씁쓸’
“삼전·현대차가 낫다” 국장 유턴 행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며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모습.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며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모습. 연합뉴스

2024년은 단연 서학개미들의 해였다. 시중엔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서학개미들의 지난해 성적표는 최근 해외주식 양도세 대상자가 정해지며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지난해 해외주식에서 250만 원 이상 번 투자자로 추정되는 양도세 확정신고 대상자는 11만 6000명에 달했다.


올해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증시가 한 치 앞이 안 보인다’는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효과’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미국 증시 변동성이 커졌고 서학개미 행보도 어지러워졌다.

‘관세전쟁’이라는 용어가 언론에 내비치기 시작할 무렵, 잽싸게 주식을 판 무리가 나왔지만 이들이 지금 웃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미국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에 세계 증시 역시 반응이 무뎌졌고 미 증시도 빠르게 회복해 버렸다. ‘미장’을 탈출한 이들 상당수가 ‘포모증후군’(FOMO·나만 소외되는 두려움)에 시달린다는 후문이다.

반등장에 올라탄 투자자도 ‘절반의 성공’에 머물렀다. 원달러 환율 1400원대에서 달러를 사들여 투자를 감행한 이들은 주가가 오르자 쾌재를 부르는가 했지만 뒤이은 환율 하락으로 수익이 줄거나, 때로는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미장에 머무르느냐, 국장에 복귀하느냐’, 혼란의 시기다.

■“관세 리스크에 손절…진입 타이밍 못 잡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전 세계에 관세전쟁 포문을 열었다. 주식판에선 ‘중국이 타깃’이라는 얘기도 나돌았지만 섣부른 생각이었다. 관세전쟁 여파는 세계 각국 증시를 강타했고, 조심성 많은 서학개미들이 미국 증시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직장인 박시훈(41·가명)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박 씨는 지난 4월 초 보유하고 있던 미국 반도체(엔비디아)와 전기차(테슬라) 종목을 전량 매도했다. 그즈음 미국은 중국에 초고율 관세 으름장을 놓았고, 기술주 중심의 주가 하락이 이어졌다. 박 씨는 “수익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주식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내 후회했다. 미중 합의가 이뤄져 관세가 낮아지자 기술주들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난 4월 7일 종가 기준 1만 5603.26을 기록한 나스닥 지수는 불과 2거래일 만에 1만 7124.97로 10% 가까이 뛰었다. 엔비디아는 18% 가까이 상승했다. 박 씨는 “지금 미국 증시가 ‘트럼프 리스크’가 불거지기 전까지 오른 상황이라 쉽사리 재진입 시점을 잡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주가 올랐는데 환율 때문에 수익 반 토막”

미 증시가 반등하면서 투자자들도 다시 달려들었다. 서학개미의 공격적 투자 성향은 가히 세계적이다. 자영업자 김진수(39·가명) 씨도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불 2배 ETF’(TSLL)를 매수했다. TSLL은 테슬라의 하루 주가 수익률을 2배 추종하는 종목인데 김 씨 역시 상승장에 기대한 수익을 한껏 챙겼다.

그러나 환율이 발목을 잡았다. 김 씨는 “원달러 환율이 1420원일 때 2만 달러어치를 매수했는데 주가가 약 10% 올랐지만, 환율이 2% 이상 하락했고 수수료까지 빼면 수익률이 7%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씁쓰레했다.

올 들어 최근까지 환전을 해 미국 주식에 뛰어든 서학개미는 대부분 환차손을 입었다. 특히 연초 1440~1450원 수준에 달러로 환전을 해둔 투자자도 적지 않다. 지난 27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369.5원을 기록했는데 주식 손익을 빼고도 환차손만 5%가 넘는 수준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원화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며 “서학개미의 입장에서는 환율 변동성이 수익률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환율 무섭다…다시 한국 주식으로”

최근 투자자들은 한동안 외면하던 ‘국장’에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 증시가 ‘트럼프 리스크’ ‘환율 변동성’ 등 변수로 고차방정식이 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대차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느껴졌다. 대학생 투자자 도병훈(25·가명) 씨는 대학 입학 후 줄곧 투자해온 미국 증시를 떠나 국장으로 복귀했다. 도 씨는 “원화 강세 시대가 올 경우 많이 오른 미국 증시보다는 저평가된 국내 증시가 주목받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미국 주식을 10억 6543만 달러(약 1조 4555억 원) 순매도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이다. 서학개미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식인 테슬라와 엔비디아만 해도 3억 609만 달러가량 팔아치웠다. 특히 양자컴퓨팅 회사 아이온큐, 원자력주 뉴스케일파워 등 최근 인기 종목들도 서학개미들에게 버림받았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가 떠난 이후로도 이들 종목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어 서학개미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장은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주(19~23일) 8072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서학개미는 팔고 동학개미(국내 주식 개인 투자자)는 사들이는 이른바 ‘셀 USA·바이 KOREA’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 미국 대선을 앞둔 2024년 10월 28일~11월 1일 이후 주간 기준으로 7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동학개미들은 삼성전자(6382억 원), 현대차(2704억 원)를 주로 샀다.

■전문가 “분산 투자 등 중장기 전략 필요”

전문가들은 단기 차익보다는 중장기 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다양한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미국 증시 대신 미국 외 다른 국가로 분산투자하고, 특히 국내 증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다시 불거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리스크와 무디스의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 감세안이 맞물린 미국의 재정건전성 문제 등으로 미국 증시는 다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반면 국내 증시는 원화 강세와 함께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주요 대선 후보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 해소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점도 서학개미 복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NH투자증권 윤유동 연구원은 “집권 초기 정부는 대체로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을 제시했고, 증권업 주가는 강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원화 강세로 외국인 순매수세가 본격 재개될지도 주목할 대목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 아래로 내려온 가운데 외국인은 이달 코스피 현물을 1조 1347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9개월 연속 이어진 외국인의 ‘셀 코리아’가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