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으로 들어온 현대사, 그리고 사람들
■유월의 거리/남찬숙
1980년 유월 민주 항쟁 상황
어린이 시각 창작동화로 탄생
■5층 삼촌/박우
북한, 러시아, 한국, 중국 누비며
강인한 삶 이어간 조선족 이야기
지난해 12월 갑작스러운 계엄령 공포와 이에 따라 발생한 몇 달간의 국가 혼란은 국민 모두를 힘들게 했다. 어린이, 청소년 역시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 예외가 될 수 없다. 실제로 탄핵을 외친 전국의 광장에선 마이크를 잡고 연단에서 민주주의에 관해 의견을 밝히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은 학교가 민주주의 수업의 하나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교실에서 생방송으로 시청하기도 했다.
질곡 많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걸 어려워하는 부모도 있다. 그렇다고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라고 예전 방식으로 대처할 수 없다. 이럴 땐 어린이, 청소년의 시각으로 풀어낸 창작 동화를 활용하자. 요즘 출간되는 어린이, 청소년용 책은 단순히 중요 사건을 쉽게 설명하는 것을 넘어 주인공, 주변 인물의 관계와 사건을 통해 당시 삶과 시대적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때로는 열 권의 역사책보다 한 편의 동화가 더 역사를 잘 이해하게 해 준다. 역사 공부는 사건과 제도, 유명인의 이름을 외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간 보통 사람들의 삶을 발견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초등학생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현대사 동화 2권을 추천한다.
먼저 별숲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생생 현대사 동화’ 시리즈가 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십 년 단위로 각 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당시 어린이의 시각으로 풀어낸 장편 창작 동화이다. 6월을 앞두고 1987년 유월 민주 항쟁을 소재로 한 <유월의 거리>가 나왔다.
오직 자식을 위해 열심히 사는 부모님,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했던 철거민, 가난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장녀, 서울 명문대 입학하며 부모의 자랑이 되었지만 군부 독재 정권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대학생, 부모와 대학생 언니 오빠의 갈등 때문에 눈치 보는 어린이, 비민주적이고 비인격적인 체벌을 감당해야 했던 당시 학교생활의 실태가 잘 드러난다.
팍팍한 현실과 힘든 시대였지만 동화 속 인물들은 유쾌하고 따뜻하다. 산동네 이웃으로 미경과 경미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다. 미경과 경미뿐만 아니라 그들의 언니들도, 부모도 모두 한 가족처럼 서로를 챙겼다. 미경이의 언니는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입학했고, 경미의 언니는 가족을 돕기 위해 취업한다.
얌전했던 미경이의 언니가 시위에 적극 참여하며 아버지와 늘 싸운다. 미경이는 불화를 일으키는 언니가 미웠다. 하지만 “데모하는 대학생은 모두 빨갱이”라고 놀리던 반 친구와 싸웠고 미경이 편을 들던 반장 태준이까지 선생님에게 불려 간다. 젊은 선생님은 둘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고, 6학년에 올라간 아이들은 5학년 선생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부당한 체벌을 하는 6학년 담임 선생님에게 항의할 수 있었다. 시위하다 명동성당에 고립된 미경이 언니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동생이 함께 성당을 찾는 후반부는 울컥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남찬숙 글·김선배 그림/별숲/160쪽/1만 3000원.
출판사 너머학교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서 핵심적인 이슈를 10대들과 함께 생각해 보자는 의미로 ‘다음 세대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5층 삼촌>은 이 시리즈의 5번째 책으로 조선족(중국 교포)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에 조선족이 온 지 30년이 넘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조선족은 저임금 일자리를 채우러 한국에 온 이들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성대 기초교양학부에 재직 중인 학자이다. 중국 지역 연구와 조선족 기업가들, 국가와 사회의 관계 등을 연구하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실제 중국을 많이 오가며 만난 조선족을 실감 나는 동화로 풀어내며 그들에 대한 편견을 명쾌하게 깬다.
북한과의 무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와 중국, 한국을 누비며 다양한 사업을 펼친 5층 삼촌의 삶과 어린이 민철이의 성장기를 담았다.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을 중국에 유통하고 중국 마라탕과 훠궈 식재료를 한국에 공급하는 등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5층 삼촌의 활약상이 흥미진진하다.
청소년용 책으로 뒤쪽에선 조선족의 과거와 현대를 설명하는 ‘5층 삼촌 깊이 읽기’를 덧붙인 저자의 배려가 돋보인다. 박우 글·장선환 그림/너머학교/160쪽/1만 7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