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쓰리고 자주 체할 때는 오래 씹기가 해답"
역류성식도염 한방치료
'충분히 안 씹고 급히 삼킨다’ 90%
과도한 위장운동은 트림·가스 유발
위산과다는 결과이지 원인 아냐
30회 이상 씹으면 위장 부담 줄어
척추 중앙부 부항으로 경락 자극
초기 약물치료 후 습관 개선 중요
역류성 식도염은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여 식도 점막에 염증과 손상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가슴 쓰림, 목의 이물감, 신물이 올라오는 증상 등이 대표적이다. 심하면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듯한 쓰린 통증이 목구멍 쪽으로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들은 약물 치료로 일시적인 호전을 보이다가 재발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위산 과다를 역류성 식도염의 원인으로 보고 치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산 과다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마치 열이 나는 환자에게 해열제만 계속 투여하는 것과 같은 접근법이다. 단순히 위산 억제제를 통한 대증치료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충분히 씹지 않고 급하게 삼키는 습관
인체는 음식을 충분히 씹도록 치아가 튼튼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대부분 음식을 충분히 씹지 않고 급하게 삼키는 습관이 있다. 실제로 만성 역류성 식도염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약 90%가 한번 음식을 넣고 5~10번 씹거나 그 이하로 씹는다고 응답했다. 천천히 먹는다고 답변한 환자들도 20회 이상 씹는 경우가 드물었다.
현대인의 '빨리빨리' 문화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만약 음식이 30회 정도 잘 씹혀 곱게 내려간다면 위산 분비량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고, 위장의 연동운동도 편안하게 2시간 정도면 충분해진다.
하지만 충분히 씹히지 않은 음식이 위장에 들어가면 위장은 과도한 운동을 해야 한다. 위산 분비량이 증가하고, 위 연동운동이 강력하게 5시간 이상 지속된다. 과도한 위장 운동은 트림, 식후 불편감, 복통, 가스 과다 등을 유발한다. 그러다가 결국 위산과 위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체했다’ 또는 ‘얹혔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위장 근육이 과도하게 긴장한 상태를 의미한다.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있고, 가슴 밑이 답답한데 체한 것이 맞나요’라고 질문하는 환자가 더러 있다. 속쓰림이나 신물이 올라오는 전형적인 증상 외에도, 명치 부위의 답답함이나 갑갑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대부분 위장 근육의 긴장과 연관된 증상이다.
손원진 김해제중한의원 원장은 “위장 근육의 긴장은 마치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허리 근육을 삐끗하여 움직일 수 없게 된 상태와 유사하다. 충분히 씹히지 않고 급하게 들어온 음식을 소화시키기 위해 위장 근육이 과도하게 일하다가 경직된 것이다. 물론 심리적 스트레스가 많거나 긴장된 상태에서 식사할 경우에도 위장 근육의 긴장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체기 증상은 두통, 근육통 등 다양해
체기 증상은 위장 증상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평소 두통이 잦은 사람은 소화불량 시 두통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 근육 긴장이 누적된 사람은 전신 근육통을 경험하기도 하고 심한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도 위장이 편해지면 이런 증상들이 모두 좋아진다.
트림이나 신물이 올라오는 증상도 만성적인 체기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만약 급체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체기는 만성화되어 위염이나 역류성 식도염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마치 한번 발목을 삐거나 허리 염좌를 겪은 후 그 부위가 더 쉽게 다치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식도와 위 점막은 보호막으로 잘 코팅되어 있어 위산의 공격으로부터 오랫동안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속쓰림이나 식도 부위 불편감을 느끼는 시점에는 이미 식도와 위 점막이 손상받아 방어 능력이 저하된 상태다.
한의학에서는 역류성 식도염을 ‘위완통(胃脘痛)’, ‘토산(吐酸)’ 같은 증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비위(脾胃) 기능 강화를 통해 위장과 식도의 회복력을 돕고 있다.
초기 급체 증상이나 아직 역류성 식도염으로 발전하지 않은 체기는 침과 부항 치료만으로도 개선될 수 있다. 침 치료는 손과 발의 합곡, 태충, 족삼리와 같은 혈자리를 자극하여 전신의 과도한 긴장을 풀어준다. 복부의 중완, 천추 같은 혈자리로 직접적으로 위장을 자극하여 위장 근육의 뭉침을 풀어준다.
손 원장은 “체기 치료의 핵심은 등 척추 중앙부의 독맥 경락을 자극하는 부항 치료로, 이 부위를 자극하면 전신의 기혈 순환이 촉진된다. 민간요법에서 체했을 때 등을 두드리거나 손가락을 따서 출혈을 내는 방법은 바로 이러한 한의학적 치료의 간소화된 형태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체질별 맞춤 처방과 치료 전략
한의학에서는 환자의 체질과 증상에 따라 개인별 맞춤 처방을 제공한다. 비위기능(위장기능)이 저하되어 기운이 없고 식욕도 감소한 환자에게는 보중익기탕 처방으로 기운을 보충하면서 위장을 치료한다. 속쓰림이나 역류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황련을 포함한 한약 처방을 활용하며, 필요에 따라 양방 제산제와 병행 치료를 권장한다.
사상체질에 따른 맞춤 처방도 중요하다. 소음인 체질에게는 보중익기탕과 향사육군자탕이 적합하고, 소양인 체질에게는 양격산화탕으로 위장의 열을 내리는 접근이 효과적이다. 식욕이 왕성하여 과식하기 쉬운 태음인 체질은 열다한소탕이나 태음조위탕을 주로 활용한다.
역류성 식도염 진단 초기에는 위산을 중화하고 줄여주는 약물이 증상 완화에는 효과적일 수 있다. 약물 처방으로 통증과 불편감이 빠르게 완화되면 식습관 개선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 관리, 과식 자제, 자극적인 음식 절제, 식후 바로 눕지 않기, 야식 피하기 등의 생활 습관 개선은 꼭 필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래 씹는 습관이다.
손 원장은 “만성적이고 재발성 역류성 식도염 환자들은 대부분 바쁜 일상으로 인해 음식을 천천히 씹는 습관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한입의 음식을 30번 이상 충분히 씹는 습관을 들이면 위장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며 오래 씹기를 강조했다.
김병군 기자 gun39@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