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항만·조선 중심은 부산… 해사법원 인천 설치 어불성설 [부산 현안, 이번엔 반드시]
객관적 유치 여건 인천 등 압도
최적지 불구 수도권 어깃장 발목
李 대표 인천과 병치 공약 ‘실망’
균형발전 등 고려하면 이의 불가
바다와 함께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부산은 기존 해양 산업을 지식·서비스 분야까지 확장하려 한다. 국제 소송과 분쟁을 맡을 해사법원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디딤돌로 꼽힌다. 선박 거래나 운송뿐 아니라 금융과 보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부산에 해사법원을 유치할 명분은 충분하다. 수십 년간 해운·항만·물류 중심지였고, 울산, 경남 거제와 함께 조선 산업을 이끌었다. 2011년 부산변호사회는 ‘해사법원 부산 유치 타당성 조사’를 진행해 국내 최초로 해사법원 신설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 해사법원은 지금까지 바다에 떠다니듯 표류한 신세였다. 지방 균형 발전에 크게 기여할 사안인데 오히려 수도권인 인천과 서울 등이 유치전에 뛰어들어 발목이 잡혔다. 올해 대선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부산 해사법원 신설 공약을 발표해 다시 불을 지폈지만, 국제 사건 전담 법원은 인천에 두겠다고 발표해 실효성 논란이 커진 상태다. 부산은 절실한데 다른 대선 후보들은 별다른 언급이 없다.
해사법원은 해양 산업과 관련한 소송과 분쟁을 다룬다. 선박 거래, 운송 계약, 해양 사고, 해상 보험, 해양 오염 등 다양한 해상·선박 관련 사건을 전문적으로 맡는다. 부산과 서울 법원에 해사전담재판부가 있지만, 국제적으로 얽힌 대다수 사건은 해외 전문 법원에 맡기는 실정이다. 영국이나 싱가포르 등으로 유출되는 법률 비용이 매년 수천억 원대로 추산된다.
해사법원이 부산에 신설되면 파급 효과는 그 이상으로 예상된다. 2022년 부산시 ‘해사전문법원 부산 설립 타당성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해사법원 신설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중개 수수료와 법률 서비스 비용으로 최소 5560억 원에서 최대 1조 1122억 원으로 추산됐다.
특히 부산은 인천보다 해사법원 효과를 극대화할 도시로 평가된다. 2022년 부산시 보고서 기준 ‘울산-부산-거제’ 조선 벨트의 선박 건조량은 세계 1위다. 부산항은 세계 2위 환적 항만이며 컨테이너 물동량은 세계 7위를 기록했다. 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은 2440만 TEU로 국내 전체 3173만 TEU의 76.9%를 기록했다. 인천항은 356만 TEU로 국내 전체 기준 11.2%에 불과했다.
정영석 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교수는 “부산은 조선과 물류 등에서 세계적 중심지이나 해양 서비스 산업 규모는 영세한 수준”이라며 “해사법원을 세워 국내 사건만 맡아도 각종 분쟁을 해결할 법률 서비스 시장이 커진다”고 밝혔다. 이어 “부산은 선박과 운임 거래 등과 관련한 시장도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며 “해사법원은 런던과 같은 거래 시장을 부산에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사법원 잠재력을 중시한 국민의힘 곽규택(부산 서동), 민주당 전재수(부산 북갑) 의원은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부산 신설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부산뿐 아니라 인천에도 해사법원 신설 공약을 발표해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주요 분야인 국제 사건을 전담할 법원은 인천에 두겠다고 공약했고, 민주당 원내대표인 박찬대 의원(인천 연수갑)이 직접 관련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해사법원이 쪼개지면 지역 균형 발전에 역행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박재율 해사법원 설치추진 부울경협의회 공동대표는 “수도권인 인천은 경제 지표에서 부산을 추월한 데다 인구도 더 많아질 추세”라며 “비수도권과 격차는 더욱 커질 수 있어 균형 발전 차원으로도 해사법원 설치를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해양 강국을 만들려면 부산을 거점으로 제대로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며 “부산에서 본원 운영을 시작하고 장기적으로 필요할 때 지원을 둘 수는 있겠지만, 국내와 국제 사건을 분리해 두 곳으로 나누는 건 국가 경쟁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