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캡틴 아메리카의 추락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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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대적자' 캡틴 아메리카 탄생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 연상
영토 야욕·반이민정책 세계가 우려
지도자 잘못 뽑으면 국민들이 고생

검찰이 ‘캡틴 아메리카’ 복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시위를 하며 중국 대사관에 난입하고 경찰서 유리창을 깨부순 40대 남성에게 지난달 말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 남성은 최후진술에서 “모든 죄를 지금 다 인정하고 피해받은 모든 분에게 사과드리고 싶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잘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미 때가 늦었다. 며칠 전에는 부산역 광장을 지나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시위대를 마주친 일이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캡틴 아메리카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됐다.

마블코믹스 영화의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1년 전인 1940년에 탄생했으니 우리 나이로 85세의 노인인 셈이다. 당시 주적은 나치였다. 작가 조 사이먼은 신문을 읽다 유럽을 정복하려는 히틀러를 보고 세상에서 보기 드문 완벽한(?) 악당이라고 감탄했다. 그가 히틀러의 ‘대적자’로 만든 캐릭터가 캡틴 아메리카다.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을 진정 사랑하는 애국자다. 그의 주된 고뇌가 “나는 미국이 이대로 흘러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가?”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의식 과잉 상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2016년에 나온 영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 스파이더맨과 대화하는 대목은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 “언론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어. 대중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어. 온 나라 전체가 그릇된 것을 옳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어. 이 나라는 다른 것보다 이 한 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세워졌네.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가 믿는 것을 옹호해야 한다는 것. 만약 대중이나 언론, 전 세계가 자네한테 비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자네의 임무는 진실의 강 옆에 선 나무처럼 굳게 뿌리를 박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 싫어, 네가 비켜!” 캡틴 아메리카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까지 된다. ‘호수 위 달그림자’가 생각난다. 왜 이런 부류의 분들은 맥락 없이 ‘진실의 강 옆에 선 나무’ 같은 문학적 표현을 억지로 끼워 넣는지 모르겠다.

영화 속 캡틴 아메리카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앞세워 미국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다. 80세를 바라보는 트럼프는 나치 자리에 중국을 대적자로 갈아 끼운 뒤 전 세계를 상대로 “싫어, 네가 비켜” 식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말해 ‘카오스’다. 트럼프 취임 100일이 지나면서 세계는 혼돈에 빠졌고, 미국은 우리가 알던 나라가 아니게 되었다. 미국인 수십만 명이 “4년 내 미국이든 트럼프든 하나는 무너지겠다”며 시위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대외적으로는 큰형 노릇을 하고,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이민자들을 유입시킨 덕분에 오늘날의 미국이 되었다. 이대로 가면 아메리카라는 용광로가 머지않아 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캐나다 마크 카니 신임 총리는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야 한다는 무례한 발언과 관세 공격에 미국과의 오랜 관계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가자지구와 파나마운하,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까지 트럼프의 영토 확장 욕심이 심상찮다. 트럼프의 노골적인 반이민정책에 미국 영주권자들은 혹시 돌아오지 못할까 해서 해외여행마저 취소하고 있다고 한다.

애플 창업가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전 세계 고급 인공지능(AI) 연구원 절반이 중국 출신인데, 이들 중 57%가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아메리칸드림으로 일어선 나라다. 처음엔 트럼프가 캡틴 아메리카를 닮았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위협을 통한 영토 확장 야욕과 반이민정책은 히틀러와 놀랍도록 닮아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 선포에도 ‘한국호’에는 선장이 없는 지금의 상태가 안타깝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부산 기업들은 미국으로부터 불공정 거래 압박을 받는 등 이미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주부산미국영사관의 문을 닫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부산미국영사관은 부산·울산·대구·경남·경북·제주 지역을 관할하며, 양국의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상징적인 곳이다. 한국을 머니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말하고, 동맹을 많은 것을 얻어내기 쉬운 거래 상대로 생각하면 더 이상 신뢰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

캡틴 아메리카도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앤트맨, 블랙위도우 같은 영웅들과 힘을 합쳐 싸웠다. 삥만 뜯어낸다면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한국과 미국은 각자의 집 앞에 내린 눈을 치워야겠지만 대통령 한 명 잘못 뽑아 이 무슨 난리인가 싶다. 손바닥의 ‘왕(王)’ 자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표시였다.

박종호 스포츠라이프부 선임기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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