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쑥 캐러 가자
고명자 (1958~)
제비꽃 옆에 앉아 캔다 풀꽃을 세다 나이를 잊은 여자가 쑥이나 캔다 봄날에는 함부로 길 나서는 것 아닌 줄 알만한 여자 오늘은 무슨 얕은꾀나 낸 듯 들판에 쪼그려 앉았다 봄볕에 그을려 등뼈가 사라지고 머리 몸통 차츰 사라지는데 아무런 대책없이 흙이나 뒤적인다 말을 잃고 손가락을 잃고 엉덩이를 잃더니 그 여자 무덤처럼 잠잠해진다
봄볕이 캔다 갈때까지 가겠다며 칼을 품고 집 나온 가슴이나 캔다 노래를 잊은 여자 오로지 슬픔인 여자를 바구니에 캐 담는다 허리를 펴느라 잠시 고개를 돌렸는데 초록 담요 위에 따뜻한 잠 귀신이 와서 몸을 눕힌다 쑥물 들고 쑥 냄새 밴 여자를 흔들어 깨운다 천 년 잠에 귀도 입도 없어진 여자 넋을 놓고 앉았는데 봄볕이 칼을 들고 캔다 꿈인지 소설인지 모를 아지랑이만 중얼중얼 풀어지고 있다
시집 〈술병들의 묘지〉 (2013) 중에서
문득, 계절의 순서가 단지 봄이어서 싹이 움트고 꽃들이 피는 게 아니라 대지를 뚫고 오르는 생명들의 열기 때문에 날이 풀리는 것 아닌가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양지바른 곳이라면 어디서나 자라서 국도 끓이고 나물도 만들고, 향기로 해충도 쫓고 쑥뜸으로 병을 다스리기도 하는 여러해살이풀. 쑥 캐다 말고 오수에 든 여자 대신 봄볕이 쑥을 캐는 수채화가 보입니다. 없이 살던 때에 봄볕 등지고 여기저기 쑥을 캐러 다니던 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척박한 환경에서도 쑥쑥 잘 자라는 쑥. 그런데 이 쑥이 토양에 있는 중금속을 흡수하는 탓에 공기 좋고 깨끗한 곳에서 채취해야 한답니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돼지풀이나 독초인 투구꽃과도 비슷해서 잘 구별해야 한다는 흔하디흔한 쑥. 도다리쑥국이 맛있다는 벌써 봄입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