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프리츠커상 건축가가 만든 '룩셈부르크 필하모니'
아트컨시어지 대표
룩셈부르크는 프랑스, 벨기에, 독일과 맞닿아 있으며 네덜란드와도 불과 50km에 떨어져 있지 않다. 3국이 면한 교통 요지여서 인구 60만 명에 불과한 이 나라의 국가명이자 수도인 룩셈부르크를 방문하거나 통과하는 일이 종종 있다. 시내 중심부를 지나던 중 백색의 독특한 외형을 한 건물이 인상적이어서 찾아봤더니,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가 만든 ‘룩셈부르크 필하모니’였다.
룩셈부르크는 1995년 유럽의 문화 수도로 선정되는데, 그해 룩셈부르크 당국은 콘퍼런스와 콘서트홀이 동시에 가능한 건축물을 건설하기로 한다. 이어 모로코 출신의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 프로젝트가 공모에 당선된다. 공사는 2002년부터 시작해, 개관은 2005년 6월에 했다. 콘서트홀의 공식적인 명칭은 조제핀 샤를로테 대공비 콘서트홀인데 현 앙리 대공의 어머니 이름이다. 각국 사절단과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열었다. 당시 룩셈부르크는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으로,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룩셈부르크 공국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펜데레츠키 교향곡 8번을 세계 초연했다.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의 초기 아이디어는 자연스러운 필터를 통해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흰색 강철로 만들어진 823개 정면 기둥이 3열로 배열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내부 기둥열은 공연장을 담고 있으며, 두 번째 기둥 열은 외벽 창문을 지지하고, 세 번째 기둥열은 하중을 담당한다.
슈박스 형태로 디자인된 그랜드 오디토리엄은 2만㎥ 규모와 최대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직사각형이라는 평면의 제약을 극복하고 음향을 최적화하기 위해 8개의 상자 타워가 공연장 내부 양쪽 벽면에 불규칙하게 배치돼 균일한 사운드 분배를 한다. 잔향 시간은 콘서트홀로는 최적인 1.5~2초를 유지하고 있다. 무대 커튼의 유연성과 조절 가능한 음향 반사판을 설치한 덕분에 음향은 다양한 음악적 요구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룩셈부르크 필하모니도 그렇지만, 대부분 백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도시의 공연장과 다르게 2000년대 이후 완공한 콘서트홀은 설계 공모를 통해 대부분 스타 건축가의 작업을 통해 태어났다. 건축가 장 누벨이 디자인한 루체른의 KKL과 필하모니아 드 파리,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한 LA 디즈니 콘서트홀, 그리고 헤어초크 드 뫼롱이 디자인한 함부르크 필하모니가 대표적이다. 건축가의 개성만큼이나 눈에 띄는 형태를 가지고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적어도 21세기에 지어지는 문화 공간은 음향학적 기능과 요구는 말할 것도 없고, 디자인까지도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평소 생각에 일치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