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신춘문예-희곡] 메리 고 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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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호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등장인물 : 메리, 남자

장소: 메리와 남자의 침실

1장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속삭임. 일어나, 일어나.

그리고 침묵.

침대에서 뒤척이는 소리. 짜증 섞인 신음.

그리고 다시 들리는 속삭임. 일어나, 일어나.

침묵.

느닷없이, 한꺼번에 모든 조명이 켜지고, 깜짝 놀란 메리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침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생활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침실. 사이드 테이블에는 부부의 사진이 놓여 있다. 메리의 옆자리에는, 누군가 밤새 몸을 뉘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보아 아침이다.

메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혹은 조난자의 절박함으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일말의 단서라도 찾고자 열심히 두리번거린다.

침대를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문이 있다. 왼쪽은 거실로 통하는 문이고, 오른쪽은 드레스 룸으로 통하는 문이다.

왼쪽 문, 그러니까 거실에서 남자가 들어온다. 정장 바지에 와이셔츠. 넥타이는 매고 있지 않다.

메리가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며 이불을 그러모아 몸을 가린다.

남자는 그런 메리를 신경도 쓰지 않고 침실을 지나 오른쪽 문, 그러니까 드레스 룸으로 나간다.

남자: (소리) 일어났어?

메리는 대답 없이 방금 남자가 나간 문만 바라본다.

남자가 넥타이를 매며 침실로 돌아온다.

남자: 잘 잤어?

메리는 말없이, 공연히 이불만 계속 그러모은다.

남자: 뭐야.

(상체를 메리 쪽으로 내밀며) 오랜만에 하려니까 잘 안되네, 자기가 좀 해주라.

남자가 넥타이를 매 달라며 상체를 내밀자, 메리는 남자를 피해 침대 반대쪽으로 달아난다. 그제야 메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겁먹은 메리를 마주 본다.

남자: …왜?

넥타이를 손에 쥔 채로 어정쩡하게 상체를 내민 남자와 이불로 간신히 몸을 가린 메리가 대치하고 있는데,

메리가, 처음 조명이 켜지던 순간처럼, 갑작스레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

메리: 아.

남자: 응?

메리: 아…

남자: 왜 그래.

메리: 아니야.

남자: 뭔데?

메리: (남자에게 다가가며) 아니야.

남자: (넥타이를 내밀며) 이거 좀 해줘.

메리가 남자의 넥타이를 매주기 시작한다.

남자: 혹시…또야?

메리는 대답이 없다.

남자: 아니다.

사이.

남자: 자기가 너무 잘 자길래 일부러 안 깨웠어. 요즘 피곤했잖아.

아침 해놨으니까 준비하고 먹어. 아직 시간은 괜찮을 거야.

괜찮아?

메리: 응?

남자: 괜찮냐고.

메리: 응.

남자: 그래.

메리는, 여러 번 해본 솜씨로, 딱 알맞은 길이로 남자의 넥타이를 매어 준다.

남자: (거실로 나가며) 고마워.

침실에 혼자 남은 메리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듯이, 얼떨떨하다.

남자가 다시 침실로 들어온다. 이제는 정장 상의도 입고 있다.

남자: 우리 부모님이랑 내일 밥 먹는 거 어디랬지?

메리: 밥?

남자: 응. 저번에 자기가 예약한다고 했잖아.

사이.

남자: 기억 안 나?

내일 우리 부모님이랑 밥 먹는 거, 내가 예약한다고 하니까, 자기가 나 없을 때 간 어떤 식당이 부모님 모시고 가기에 딱 좋다고 자기가 예약하겠다고 그랬잖아.

메리: 내가?

남자: 어. 자기가 그랬잖아.

사이.

메리: 아.

남자: 이제 생각났어?

메리: 아…

사이.

남자: 괜찮아?

메리: 어, 예약했어.

남자: 그래?

메리: 응.

자기 부모님 집에서도 가까워.

남자: 어. 나중에 위치 보내주라. 부모님한테도 보내주게.

(다시 거실로 나가며) 자기도 이제 준비해야 하지 않아?

메리: 응.

그러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던 메리.

잠시 후, 메리가 서서히 일어나서는 드레스 룸으로 나간다.

메리가 나간 뒤 침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더 밝아졌다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밤이 찾아온다.

정장을 입은 메리가 거실을 통해 침실로 들어온다. 하루치의 피곤을 덧입은 모습이다. 침실을 지나 드레스 룸으로 나간 메리가, 잠시 후 아침과 똑같은 옷으로 갈아입은 채 침실로 돌아온다. 침실로 돌아온 메리는 거실로 다시 나가려다가, 잠시 멈춰 서서는 침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부부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성큼 다가가 사진을 들고는 한참을 들여다본다.

남자가, 아침의 정장을 그대로 입은 채, 거실을 통해 들어온다.

남자: 일찍 왔네?

메리: …어.

남자: (드레스 룸으로 나가며) 저녁은?

메리: 응?

남자: (소리) 난 먹고 왔는데. 자기 저녁은?

메리: 나도 간단하게 먹었어.

남자: (소리) 그럼 맥주나 한잔 할까?

메리: 응.

메리는 계속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방향을 본다.

남자: (소리) 혹시 자기가 엄마한테 전화했어?

메리: 뭐라고?

남자: (침실로 들어오며) 자기가 혹시 우리 엄마한테 전화했냐고.

메리: 내가?

남자: 응.

메리: 왜?

남자: 내일 식당 어딘지 우리 엄마가 이미 알고 있던데?

메리: 아.

안 했어.

남자: 진짜?

메리: 응.

남자: 근데 우리 엄마가 어떻게 식당이 어딘지를 알고 있지?

메리: …모르지.

남자: 이상하네…

(거실로 나가며) 안주 뭐 해줄까?

메리: 아냐, 배불러.

남자가 나간 뒤, 메리는 한동안 더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레 원래 그 자리에 놓은 뒤, 거실로 나간다.

암전.

2장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속삭임. 일어나, 일어나.

그리고 침묵.

침대에서 뒤척이는 소리. 짜증 섞인 신음.

그리고 다시 들리는 속삭임. 일어나, 일어나.

침묵.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빛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메리가 눈을 뜬다.

메리의 옆에는 남자가 누워있다. 곤히 잠든 모습.

남자를 발견한 메리가 깜짝 놀라 침대에서 뛰쳐나온다.

소란 탓에 남자가 깬다.

남자: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뭐야.

메리는 경악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볼 뿐이다.

남자: 뭐야?

여전히 대답 없는 메리.

남자: (몸을 일으키며) 왜 그래?

메리: …누구세요?

침묵.

남자: (한숨을 쉬고 마른세수를 하며) 또야?

어제도 못 잤단 말이야. (자리에 눕는다.)

메리는 남자에게서 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지려고 벽에 몸을 붙인 채 웅크린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잠이 든다.

새근새근, 남자의 고른 숨소리만 들리는데,

사이드 테이블 위의 사진을 발견한 메리가, 남자와 자신이 다정하게 붙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한동안 그 사진을 계속 바라보다가, 자포자기한 발걸음으로 남자 옆으로 가 침대에 몸을 누인다.

메리가 침대로 들어오는 인기척에 남자가 잠에서 깬다.

남자: 자기야.

메리는 대답이 없다.

남자: 자기야

메리는 대답이 없다.

남자: 자기야.

메리는 대답이 없다.

남자: 하…나도 모르겠다, 이제.

사이.

메리: 잘 자.

암전.

3장

침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며 침대를 비춘다.

아침이다.

침대에는 남자만 누워있고, 그동안 메리가 누워 있었던 자리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남자의 고른 숨소리.

메리가 거실에서 침실로 들어온다. 화려한 무늬의 앞치마를 하고, 성큼성큼, 즐거운 발걸음으로. 남자의 얼굴을 보고 멈칫하지만 애써 진정하며 침대 맡으로 가서는,

메리: (남자를 흔들며) 여보.

남자의 짜증스러운 신음.

메리: 여보.

남자: (잠에서 덜 깬 목소리) 5분만.

메리: 아까도 5분만 했잖아.

남자: 진짜, 진짜 5분만.

메리: 지각이야.

남자: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짜증스럽게) 진짜.

메리: 진짜로 이러다가 지각이라고.

남자: 알았어.

메리: 일단 씻고 나와. 아침 해뒀어.

남자: 알았어.

남자가 드레스 룸으로 나가고, 메리는 거실로 나간다.

잠시 후, 수건만 두른 남자가 침실로 들어온다. 남자의 머리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다.

남자: 오늘이지?

메리: (소리) 뭐라고?

남자: (큰 목소리로) 엄마 아빠 만나러 가는 거, 오늘이지?

메리: (침실로 들어오며) 그치?

남자: 요즘 날짜 감각이 없네.

부모님한테 식당 어딘지는 전달 드렸나?

메리: 내가 전달 드렸어.

남자: 자기가?

메리: 응.

남자: 어…

고마워.

메리: 당연하지.

메리가 남자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남자가 깜짝 놀라 움찔한다.

메리도 놀라서 뒷걸음질한다.

남자: (애써 침착한 척하며, 다시 드레스 룸으로 나가며) 옷 입고 나올게. 아침 뭐야?

메리: 그냥 있는 걸로.

남자: (소리) 맛있겠다. 고마워.

남자가 나간 뒤, 메리는 사이드 테이블의 사진을 바라본다.

사이드 테이블로 다가가 사진이 보이지 않게 액자를 엎는다.

남자: (소리) 자기야, 내 넥타이 못 봤어?

메리: 넥타이?

남자: (소리) 응, 넥타이.

메리: 거기 세 번째 서랍에 있지 않아?

남자: (소리) 없는데?

메리: 그럼 다섯 번째 서랍에는?

남자: (소리) 없어.

메리: 잠깐만.

메리가 드레스 룸으로 나간다.

잠시 후, 메리가 한 손에 넥타이를 들고 침실로 들어온다. 대충 옷을 걸친 남자도 따라서 들어온다.

메리: (침대를 가리키며) 앉아, 내가 매어 줄게.

남자: …그래?

메리: 응.

남자가 떨떠름하게 침대에 앉는다.

메리가 남자에게 넥타이를 매어 주기 시작한다.

메리: 요즘 이렇게 넥타이까지 매어 주는 여자가 어디 있다고.

메리가 남자의 넥타이를 조인다.

메리: 안 그래?

메리가 남자의 넥타이를 조인다.

너무 꽉 조이는지, 남자가 불편해한다.

메리: 자기는 참 복 받았다, 그지?

메리가 남자의 넥타이를 조인다.

남자가 캑캑대기 시작한다.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메리: 안 그래?

남자: 그만.

메리: (넥타이를 계속 조이며) 안 그래?

남자: 그만!

메리: (넥타이를 계속 조이며) 안 그러냐고!

남자: (메리를 뿌리치며) 그만하라고!

사이.

남자: 왜 그러는데.

메리: 뭐가?

남자: 왜 그러냐고.

메리: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복에 겨워서는.

메리가 거실로 나간다.

남자가 어이없어서 씩씩대다가, 메리를 따라서 거실로 나간다.

암전.

4장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속삭임. 일어나, 일어나.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빛에 희미하게 침실이 보이기 시작하면,

방 한구석에 웅크린 메리가 핏발 선 눈으로 곤히 잠든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다.

잠꼬대를 하던 남자가 잠결에 메리의 이런 모습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다.

남자: 뭐…뭐…뭐야?

메리: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남자: 뭐…뭐가?

메리: (계속)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남자: 뭔데?

메리: (갑자기) 너 누구야?

남자는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메리: 너 누구냐고.

남자: 무슨 소리야.

메리: 오늘이 몇 번째야?

남자: 아직 한밤이잖아.

메리: 어제 걔는 어디로 갔어?

남자: 악몽이라도 꿨어?

메리: 그 전날은? 그 전날은? 그 전날은?

남자: 뭐야. 뭔데.

사이.

남자: 또야?

메리: 그 전날은? 그 전날은? 그 전날은?

남자: 그 전날은 뭐?

메리: (아주 큰 소리로) 그 전날은!

침묵.

메리: 너 누구야?

남자: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메리: 아니야, 너는.

남자가 침대에서 나와 메리에게 육박한다.

남자: 뭐가 아닌데?

메리: (고개를 돌리며) 아니야, 아니야.

남자: 봐.

메리: (더 세차게 고개를 돌리며) 아니야, 아니야.

남자: (메리의 턱을 잡아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막으며, 위협적으로) 보라고!

메리: (눈을 감으며) 아니야, 아니야.

남자: 나야.

메리는 거의 울먹이며 가까스로 눈을 떠서 남자를 본다.

남자: 나라고.

메리: 누구야!

남자: 나라고.

메리: 누군데!

남자: 나라고!

사이.

남자: (메리를 안으며) 그래, 나야.

남자에게 안긴 메리는 온몸에 힘이 빠져서는 축 늘어진다.

암전.

5장

갑작스럽게 모든 조명이 켜지면,

곤히 잠들어있는 남자 곁으로 침대 맡에 메리가 서 있다.

메리는 가짜 콧수염을 붙이고 있다.

잠든 남자를 한참 지켜보던 메리는 곧 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지그시 누른다.

암전.

6장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 일어나. 일어나.

갑작스럽게 켜지는 조명. 이전과는 다르게 모두 백색 형광등이다.

창백한 조명 아래서 침실은 이제 병실처럼 보이고, 잠든 채 침대에 누워 있는 메리도 환자복을 입고 있다.

메리가 눈을 뜨고 익숙한 듯 주위를 둘러보는데, 때마침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가 들어온다.

남자: 메리 씨, 일어나셨네요.

사이.

남자: 메리 씨?

메리: 네.

남자: 오늘은 컨디션이 좀 어떠세요?

메리: 꿈을 꿨어요, 선생님.

남자: 꿈이요?

메리: 네.

남자: 어떤 꿈을 꾸셨나요?

메리: 선생님이 제 남편이 되는 꿈을요.

사이.

메리: 선생님.

남자: 네, 네.

메리: 이 꿈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남자: 그건 말하기가 쉽지 않아요.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고, 의미가 있다고 해도 꿈의 표면 내용과는 다른 의미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메리: 선생님.

남자: 네, 메리 씨.

메리: 저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사이.

남자: 그걸 우리가 함께 알아가는 작업 중이었어요.

메리 씨가 왜 여기 있게 됐는지.

어떻게 해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지.

우리가 함께, 그걸 알아가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지요.

메리: 선생님.

남자: 네.

메리: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사이.

메리: 그러니까.

선생님이 남편이었던 꿈이 지금 이것보다 훨씬 더 생생한데.

그쪽이 차라리 현실 같은데.

그러면...

그러면 이게 꿈인가요?

아니.

이게 꿈이 아니라면 꿈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이렇게 하면 되나.

메리가 자신의 뺨을 세게 때린다.

남자가 그런 메리를 말린다.

남자: 메리 씨!

사이.

메리: 선생님.

남자 :그러지 마세요, 메리 씨.

여기서는 그러시면 안 돼요.

메리: 선생님.

남자: 네, 메리 씨.

메리: 자기야.

남자는 대답이 없다.

메리: 야.

남자는 대답이 없다.

메리: 야.

남자는 대답이 없다.

메리: 야!

메리가 대답 없는 남자에게로 튀어 나간다.

메리: (남자의 멱살을 잡고) 대답해! 대답하라고!

남자는 대답이 없다.

메리: 야! 대답하라고! 야!

갑자기 모든 조명이 꺼지고.

메리: 대답해! 대답해! 대답하라고!

남자는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다.

메리는 흐느끼기 시작한다.

곧이어 남자가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메리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정적.

7장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면.

메리가 침대 헤드보드에 기대앉아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고 있고,

남자는 곤히 잠들어 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자리를 옮겨 남자의 얼굴을 비추고,

남자가 짜증스러운 신음과 함께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려 해보지만 소용없다.

남자: 뭐해?

메리는 대답이 없다.

남자: 좀 더 자지, 뭐해?

메리: 일어나야지.

남자: 벌써?

메리: 늦었어.

사이.

남자: 그래?

사이.

남자: (등을 돌리며) 난 좀 더 잘게.

남자가 다시 잠에 든다.

남자의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만 소심한 반향을 일으키며 극장에 울린다.

그때, 어디선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가, “일어나, 일어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또 다른 목소리가 그 위에 겹친다. 이전 장면에서 메리가 했던, “대답해”라는 말을 속삭이는 목소리.

그리고 목소리가 하나 더.

점점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목소리가 하나 더.

목소리가 하나 더.

이윽고 이전 장면에서 메리가 했던 모든 말들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겹쳐서, 내용은 제대로 들리지 않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는 방식으로, 한꺼번에 들리기 시작한다. 시끄럽다.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만 메리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볼 뿐이다.

그러다 속삭이는 목소리의 지글거림이 갑자기 그치면,

메리 이제 일어나야지.

암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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