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국가는 어떻게 실패하는가
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세계해양포럼 기획위원장
‘혹자는 조선이 반드시 망한다고 했다. 조선을 망하게 한 자는 처음에는 중국인이고, 이어서 러시아인, 그 끝에 일본인이 있다. 그러나 정작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조선인 스스로다.’
100여 년 전, 중국 사회개혁가 량치차오(梁啓超)가 조선 망국의 원인을 분석해 당시 언론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그는 조선이 내부 교란으로 망국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린 뒤 그 책임을 정치 갈등과 사회 분열을 획책한 군왕과 지배계층에 돌렸다.
‘12·3 계엄’ 후폭풍에 경제 전반 악영향
해양산업도 마찬가지… 동력 잃은 듯
뺄셈 정치로 시대 오판 땐 미래 비관적
한국 정치적 갈등 선 넘어… 관리 시급
그때의 조선이 지금의 대한민국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두 상황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것은 기우일까. 나라가 망하는 순간까지 이전투구를 일삼으며 사회 분열을 조장한 조선의 정치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지나친 비관론일까.
2024년 갑진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푸른 청룡의 해’라며 국운 상승을 한껏 기대하게 만든 용꿈은 세밑의 기습적인 ‘12·3 비상계엄’으로 인해 전국민적인 악몽이 됐다. 계엄 후폭풍은 경제 전반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혼란이 없다”는 정부의 공언과 달리 증시와 외환시장은 이미 출렁이기 시작했다.
비상계엄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탄핵 정국이라는 더 큰 뇌관의 폭발로 이어졌다. 경제는 한순간에 정치의 종속변수로 전락했고 경제 주체들은 방향을 잃은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특수는 고사하고 새해 경기도 낙관하기 어렵다. 자영업자들은 망연자실한 상태이며 기업들은 신년 투자계획보다 정국의 향방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정부는 존재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통령 권한대행조차 국회로부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호통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양산업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과 미중 무역 갈등 등 당장 헤쳐 나가야 할 현안이 수두룩하지만 어디에서도 추동력을 찾기는 힘들다.
진해신항 건설과 같은 중장기 투자, 각종 시급한 수산 정책, 해양과학과 연동된 스타트업 지원사업 등이 모두 동력을 잃은 듯하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경고는 정치적 수사로 끝나지 않았다. 부산항만공사 사장을 포함한 공공기관장 인사는 중단됐고 이는 부산항의 컨트롤타워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게 ‘불안’에서 빚어졌다.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안 상황은 국민이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갈지 모른다. 계엄이나 탄핵과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예측하지 못한 불안이 ‘상수’가 될 때, 그것은 집단적 공포로 돌변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 독일 정치·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의 치명적인 죄악으로 객관성과 책임성의 결여를 꼽았다. 가장 객관적인 시각과 강한 책임성이 요구되는 직업인데도 정작 현실 정치에서는 그런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객관성 결여로 대의 정치는 진영논리에 푹 빠졌고, 책임성 결여로 여야는 국가 경제가 파탄에 이를 상황에서도 서로 남 탓만 일삼고 있다. 지금의 한국 정치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경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의 저자인 기 소르망은 한국어판 서문 ‘두 개의 한국, 살아 있는 경제의 교훈’에서 남북한 두 체제를 극명하게 비교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애쓰모글루도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남북한을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로 나눴다. 소수 엘리트에게 권력이 집중된 ‘착취적 국가’ 북한은 거듭된 경제 정책의 실패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지만, 자유경제와 민주주의로 ‘포용적 국가’가 된 대한민국은 같은 시기에 세계 10대 무역 강국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의 결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런데도 덧셈 정치가 아닌 뺄셈 정치로 시대를 오판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국민을 둘로 나누는 정치적 갈등에 대한 관리가 시급하다. 〈극한 갈등〉의 저자 아만다 리플리는 “갈등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고 봤다. 우리의 정치적 갈등은 이미 선을 넘었다. 비상계엄과 탄핵은 이러한 갈등을 방치한 관리 부재의 결과다.
늘 그랬듯이, 상생의 정치는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상대를 탓하기보다는 서로를 인정하고 의견을 겸허히 듣는 것으로 새해를 준비하면 좋겠다. 100년 전 조선 망국론이 다시 거론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