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라벨의 '볼레로', 변화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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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모리스 라벨. 위키미디어 제공 모리스 라벨. 위키미디어 제공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당신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들일 수 없다”라고. 변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은 단 한 치도 같은 것이 없고, 동일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제나 오늘이나 다를 것이 없다. 카오스와 코스모스, 다양성과 동일성이라는 형이상학의 비밀을 음악은 너무나(?) 쉽게 풀어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같은 작품이다.

정확히 104년 전 오늘, 라벨(1875~1937)의 ‘볼레로’가 초연되었다. 1927년 라벨은 당시에 발레리나로 유명하던 이다 루빈슈타인에게 무용 음악을 한 곡 의뢰받았다. 그 춤은 술집의 탁자 위에서 무용수가 춤을 추다가 점점 격렬해지는 리듬을 따라 손님들과 함께 춤을 춘다는 내용이었다. 라벨은 이듬해인 1928년에 그 음악을 발표하면서 스페인의 민속 무용인 ‘볼레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라벨 '볼레로'-런던심포니(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 라벨 '볼레로'-런던심포니(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

볼레로는 작은북의 반복적인 리듬 위에 두 개의 주제를 끈질기게 반복한다. 곡이 반복될 때마다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트럼펫, 색소폰 등이 더해지면서 음악을 점점 키워간다. 라벨은 이 집요한 반복을 통해 독특한 음향적 색채와 극도의 긴장감을 연출한다. 마침내 베이스 드럼과 심벌즈가 등장하면서 음악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라벨을 두고 왜 ‘오케스트레이션의 제왕’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는 곡이다.

그는 정말 다양한 음악적 소재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작곡가였다. 재즈, 폭스트롯, 찰스턴 등 다양한 대중음악 양식도 다루었고, 스페인의 민속 음악에도 폭넓게 관심을 보였다. ‘스페인 랩소디’ ‘스페인의 한때’처럼 이국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들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관현악법에 능통했던 그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비롯한 숱한 명곡을 편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0년엔 전쟁 중 오른손을 잃은 오스트리아의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했고, 이어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완성했다. 그러나 자동차 사고로 인해 머리를 심하게 다친 후 뇌 질환으로 폐인의 삶을 살다가 1937년 세상을 떠났다.

‘볼레로’는 라벨이 살아 있을 때 이미 대성공을 거뒀다. 라벨 자신은 그저 실험 삼아서 만든 곡이었는데, 너무나 인기를 끌게 되자 오히려 당황했다고 한다. 이 곡은 현재에도 가장 자주 연주되는 클래식 레퍼토리 중 하나다.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의 안무 이후, 무용계에서도 안무가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작품이 되었다. 변화의 원리를 이처럼 재미있고도 명확하게 들려준 음악을 찾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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