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트럼프의 신세계: 미래 바꾸려고 과거로 돌아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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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준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트럼프 또다시 ‘세계의 대통령’ 자리에
자국 우선주의로 국제질서 깨트릴 것
동맹국을 비용 청구서 대상으로 간주
우리 정부, 주한미군 문제 잘 대처해야
2차 대전 초래 1930년대로 회귀 우려
세계평화·자유무역 기여 ‘맏형’ 역할을

미국 대선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6일 대선 승리 선언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대선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6일 대선 승리 선언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 대통령이 가진 글로벌 영향력과 역할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처럼 중요한 자리이지만, 미국의 구식 선거제도는 단 일곱 개의 경합 주에서 4년 동안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책임질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세계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라면 마땅히 한국, 일본, 서유럽 등 우방국에게도 선거인단이 배정되어야 한다”는 지인의 의견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게 슬픈 현실이다. 어찌 되었든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이상, 그의 정책이 미국을 넘어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인의 첫 번째 관심은 그가 공언한 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속히 종결지을까?’ 하는 점이다. 트럼프의 전쟁 종결 방안은 매파 현실주의자들의 해결책과 일맥상통한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점령하고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고 여기에 비무장지대를 조성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20년간 불허한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응하지 않으면 무기 공급을 중단한다.” 이러한 트럼프의 종전 방안은 약소국을 힘으로 굴복시키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하찮은’ 동맹국, ‘나쁜’ 자선단체, ‘비대한’ 국제조직에 돈 쓰는 것을 혐오하는 사업가이다. 그의 눈에 우크라이나는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별 볼일 없는 국가일 뿐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 입장에서 한미동맹은 피를 나눈 혈맹이지만, 트럼프는 돈을 지불하지 못하면 주한미군을 축소 내지 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이 한국을 방위하는 측면도 있지만, 미국의 세계 패권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명심하고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세계인의 두 번째 관심사는 트럼프의 대외경제 정책이다. 트럼프는 관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묘사할 정도로 관세를 중시한다. 그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특히 중국산 제품은 고율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공언했다.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되면 한국의 대미, 대중 중간재 수출도 타격받을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만약 트럼프가 모든 국가에 보편적 관세를 부과한다면, 다른 국가 역시 이에 대응하여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깨지고 세계경제는 블록화, 보호무역으로 돌아설 수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미국은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도입하여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유럽 국가들도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제 무역은 급격히 감소했다.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면서 세계경제는 축소되었고, 일부 국가들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팽창주의와 군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만주와 동남아시아를 침략했고, 독일은 유사한 논리로 유럽에서 생활권(lebensraum·레벤스라움)을 찾아 나섰다. 보호무역주의와 경제적 갈등이 주요 국가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져 2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를 방지하는 대신 자유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브레튼우즈 체제 및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등 다양한 조치를 마련하고 실행에 옮겼다. 경제적 상호의존을 통해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를 바탕으로 세계를 경영했다. 이러한 자유주의 기조는 민주당 혹은 공화당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래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연속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한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바로 이러한 규칙 기반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1930년대 과거의 보호무역주의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위대했던 진짜 이유는 국제사회에 많은 공공재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즉, 단기적 이익보다는 자유무역과 평화에 기반한 국제체제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맏형 역할을 한 게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자기 이익을 좇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유리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국가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미국 스스로 세계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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