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폭염 추석이 던진 경고
연휴 내내 유례없는 무더위
인류 경각심 촉구 경종인 듯
“종말의 징후” 인류세 논란
지구 미래 향한 화두 제시해
정부 탄소 정책 재정립 필요
민간의 적극 참여 동반돼야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 한가위가 아니라 한더위!”
며칠 전 추석 명절을 두고 세간에서 한탄조로 나온 말이다. 그만큼 더웠다. 연휴 내내 열대야와 함께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올여름 유례없는 더위에 사람들은 놀랐는데, 추석에까지, 아니 추석 이후에도 계속되는 폭염에 더 경악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종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런 시대에 아기를 낳는 건 죄악”이라는 젊은이들의 푸념이 푸념이 아니라 절규임을 깨닫게 된다.
예언이든 경고이든 인류에게 경각심을 촉구하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들렸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논란이 그중 하나다. 지질학적으로 현세는 충적세(沖積世, Holocene)다. 마지막 빙하기로부터 지금까지 1만 7000여 년 동안의 시기로,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사람이 살기에 딱 좋은 기후 덕에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지구가 변하고 있다. 아니, 이미 변했다. 무엇보다 기후가 옛날과 확연히 다르다. 비가 내리면 걷잡을 수 없이 내리고, 기온은 펄펄 끓어 식을 줄을 모른다. ‘적당’이라는 게 없다. 마치 인류를 위해 존재한 것처럼 보이는 충적세가 이제는 끝났다고 봄 직하다.
온전히 사람 탓이다. 생산활동을 핑계로 환경을 파괴했고, 거기에 비례해 탄소 배출량이 급증하면서 이상기후를 비롯한 종말의 징후가 확연해진 것이다. 인류가 낙원의 시기인 충적세를 스스로 끝장내고 전혀 다른 시대를 열었으니, 그 새로운 시대를 인류세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몇 년 사이 지질 전문가들 사이에서 쏟아졌다. 인류세 논의는 아직 시작 단계로, 올해 3월 국제지질학연합(IUGS)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됐고, 지난달 말 부산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총회(IGC)에서도 제안됐다. 지구 기준으로 봤을 때 기존 충적세가 인류세로 바뀌었다고 할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모두 부결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인류 종말을 경고하는 메시지로서 인류세는 여전히 유효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점점 더 뜨거워지고 점점 더 오염되고 점점 더 파괴되는 지구를 향해 인류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중한 화두로 기능하는 것이다.
관련해, 상징적인 일이 지난달 29일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우리 정부의 탄소 감축 행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20년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 0) 달성을 국가 비전으로 발표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른 것으로,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정부가 탄소 감축 목표를 2030년(2018년 대비 40%)까지만 정해 놓고 이후로는 아무런 규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가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정부에 대해 2031년 이후의 감축 목표를 구체화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더불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탄소중립과 관련해 미래 세대에 무책임한 정부를 질책한 셈이다.
녹색성장이든 탄소중립이든 결국은 인류, 특히 미래 세대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갈 길이 멀고도 험한데, 그에 비해 현 정부의 노력은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최근 파행을 겪고 있는 그린리모델링 사업이 좋은 예다. 정부는 2014년부터 탄소 감축 차원에서 민간 건축물 친환경 리모델링 사업을 예산을 들여 지원해 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사실상 사업을 폐기한 것이다. 소소하지만 탄소중립과 관련해 현 정부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여하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만큼 정부의 태세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 2031년 이후의 탄소 배출 목표를 제시하는 등 장기적인 차원에서 탄소중립 정책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친원전 정책은 미래 세대에 또 다른 부담을 지운다는 점에서 신중한 논의와 함께 다른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국회 차원의 관련 법 개정 노력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은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만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 일상화 등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개인과 기업의 실천이 병행돼야 한다.
누구는 탄식하며 말한다. “작금의 이상기후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데 우리가 뭘 어쩌겠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으면 인류의 미래가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올해 추석은 유례없는 폭염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했다.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질 때”라고. 자연이 인류에게 보낸 최후통첩일 테다. 그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테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