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혼돈과 질서, 기후 시스템의 양면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1961년 미국 MIT 연구실에서 갓 부임한 교수가 기온 분포를 예보할 수 있는 간단한 예측 모델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 모델은 날씨의 비선형적인 특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교수는 기본값을 설정하고, 당시 컴퓨터를 이용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온도 값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비슷한 기본값들을 설정하여 모델을 반복 실행하면서 여러 기온 데이터 세트를 만들었다. 비슷한 초기 조건에서 생성된 데이터이기 때문에 그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비슷한 값을 지닌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 크게 달랐다. 거의 동일한 초기 조건에서 시작된 온도 값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였던 것이다.

구식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치부될 뻔한 이 테스트는 한 젊은 교수의 집념 덕에 물리학의 중요한 이론으로 발전했다. 이 이론이 바로 카오스 이론이며, 이를 시작한 교수가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z)이다. 거의 모든 자연계 시스템은 비선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중 가장 독특한 성질이 바로 카오스다. 비슷한 초기 조건에서 시작한 동일한 시스템이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는데, 이를 카오스 이론에서 ‘초기 조건의 민감성’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줄을 설 때 나와 앞 사람의 순서 차이는 매우 작은 찰나의 순간에 결정되지만, 그 결과로 누군가는 1만 번째 고객 경품 냉장고를 얻는 큰 행운을 얻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비선형 시스템의 고유한 특성으로, 오늘날 현대 물리학의 중요한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날씨는 카오스 성질 자연 현상

단기 예보 한계 어쩔 수 없어도

장기 시간대에는 규칙성 보여

예측 가능성 최대한 활용해야

카오스 이론을 바탕으로 보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일기 예보의 신뢰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날씨는 카오스의 성질을 가진 자연계의 대표적인 시스템이다. 기상 예보 모델이 실제와 약간 다른 경곗값이나 초기 조건을 가질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측 결과가 실제와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이는 모델의 한계가 아니라 자연계의 본질적인 특성 때문이다. 물론, 더 정교한 모델을 개발하면 예측이 개선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 곳곳의 이상기후 현상은 신뢰할 수 있는 예보를 더 일찍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아쉽지만 카오스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요구이다. 날씨는 본질적으로 예측이 어려운 비선형적인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단기 예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한 사람의 인격이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듯이, 기상과 기후 시스템도 카오스라는 단일한 특성만이 적용되진 않는다. 기후 시스템은 약 3일 이내와 같은 단기 시간대에서는 카오스의 성질을 지니지만, 이와는 달리 2주 이상의 장기적인 시간대에서는 규칙성도 갖는다. 2014년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한 연구는 남반구 중위도 강수량의 총량이 약 25일의 주기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남반구 중위도에 비가 많이 내리는 기간이 존재하면 약 12일 후 비가 적게 내리는 날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기성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특징으로, 카오스의 특성과는 대조적이다. 즉 정확한 날씨에 대한 예보는 3일 정도의 단기 예측에서는 불확실하지만 2주 정도의 장기 예측에서는 규칙성을 보일 수 있다.

오전 9시까지 출근하는 직장인은 직장에 도착하기까지 다양한 변수를 마주하게 된다. 가령 집을 나서자마자 중요한 서류를 잊고 다시 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도로 위 사고로 교통 체증에 걸릴 수도 있다. 신호등을 기다리지 않는 행운으로 운 좋게 바로 출발하려는 버스에 승차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변수 때문에 시시각각 직장인의 정확한 위치와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직장인은 대체로 9시 무렵에는 직장에 도착한다. 출근길 직장인의 정확한 위치를 분 단위로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9시 언저리에 회사에 도착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

최근 연구는 중위도 제트 기류와 이의 불안정성에 의해 발생하는 저기압이 상호작용하면서 25일 주기의 패턴이 형성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주기성을 고려한 예보는, 마치 책임감 있는 직장인이 9시 무렵에 도착하는 것처럼, 약 2주 후의 날씨를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비록 날씨의 카오스적인 성질이 단기 예보의 한계를 드러내지만, 이와 더불어 기상기후 시스템이 지닌 예측 가능한 성질은 신뢰할 수 있는 중장기 예보가 가능하다는 희망 또한 제공한다. 기후 변화로 극한 기상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신뢰성 있는 중장기 예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앞으로의 예보는 이러한 예측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