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강화로 되레 가해자 소송 증가…‘제2 정순신’ 못 막을라
당정협의회 학교 폭력 근절 대책
수능 위주 전형서 학폭 반영 확대
대학 졸업 4년 뒤까지 ‘징계’ 남아
보존 대상 ‘중대 폭력’ 기준 필요
“자칫 ‘낙인’ 우려, 교육적 접근을”
가해자 불복절차 2년 새 배 늘어
면피성 소송 막을 대응책 필요
정부가 5일 발표한 학교 폭력 대책의 핵심은 징계 기록의 학교생활기록부 보존 연장과 대학 입시 정시 반영이다. 하지만 학교 폭력 제도 개선을 촉발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에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소송 문제’의 보완책은 이번 대책에서 빠져 있어 추후 세부 보완이 필요한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시 반영, 보존 연장
교육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5일 오전 국회에서 학교폭력 대책 관련 당정협의회를 개최해 교육부의 학교 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논의했다. 당정은 학생부의 중대한 학교 폭력 징계 기록 보존기간을 연장하고, 대입 수능 위주 전형에도 이를 확대 반영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수시는 학생부를 활용한 전형인 만큼 학교 폭력 기록 등 확인이 일부 가능했지만, 정시에는 학교 폭력 기록이 반영되지 않는 것을 보완한 것이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이 서울대에 정시로 합격한 것이 사회적 공분을 샀던 부분을 보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162개교 학교 폭력 대입 반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86%가 징계 기록을 반영한 반면 정시에서는 3%였다.
당정이 학교생활기록부 보존의 경우 ‘중대한 학교 폭력’을 전제로 든 만큼 전학과 학급 교체, 출석 정지 등의 조치 기록도 보존 연장 대상 징계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학교 폭력으로 받는 8호 조치인 전학부터 졸업 후 2년간 학생부에 남겨야 한다. 4호 사회봉사, 5호 특별교육·심리치료, 6호 출석 정지, 7호 학급 교체는 2년 보존을 원칙으로 하되 학내 전담기구 심의를 거쳐 졸업 직전 지울 수 있다.
교육계에서는 당정 협의에서 ‘취업 때까지 보존’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만큼 대학 졸업 기준 4~5년 뒤까지가 현실적인 보존 기간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처분을 보존할 것인지, 중대한 폭력의 기준이 무엇인지 구분이 모호해 향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 관계자는 “학생 때는 누구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주홍글씨를 새기지 말고 학교 안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송’ 빠진 대책
이번 대책은 가해 학생 측의 행정심판, 행정소송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발표된 대책 자체가 정순신 변호사 아들과 같은 ‘법전문가’의 면피성 소송 탓에 시작된 것인데 역설적으로 강화된 처벌이 소송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교육부가 공개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의 행정심판 청구 건수는 피해자보다 2배, 행정소송은 9배 더 많다. 가해 학생의 불복절차(행정심판·행정소송)는 2020년 587건, 2021년 932건, 2022년 1133건으로 늘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교권본부장은 “학교 폭력 징계에 불복하는 행정심판, 소송, 집행정지 인용 등이 늘어나는 문제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학도 이번 대책을 두고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대학은 기존 학교생활기록부를 활용해 학교 폭력 가해 학생 입학 여부를 심사했지만 학교 입학 후 소송으로 결과가 바뀔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대입 후까지 소송전이 이어지지는 않지만 바뀐 제도하에서는 가해 학생이 입학 탈락 불복 소송 등으로 소송전을 이어 갈 가능성도 생겼다.
부산의 한 대학 입학처장은 “입학전형 과정에서 가해 학생이 학교 폭력 징계에 불복하는 소송을 진행 중인 경우 대학은 어떤 판단을 해야할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자퇴 학생에 대한 기록 열람을 할 수 있는 권한, 학교 폭력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 소송 과정을 대학이 열람할 수 있는 권한 문제 등 세부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