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철의 사리 분별] 자영업자들이 사라진 골목에서
논설위원
코로나 이후 기반 붕괴 위기 내몰려
부산 4년 만에 8만 1000명 급감
초불황·재룟값 폭등 경영난 심화
도시 곳곳마다 임대 매물 넘쳐나
골목상권 죽으면 지역 문화도 붕괴
사회 공동체 함께 방법 모색 나서야
가끔씩 찾던 식당이 있었다. 회사서 가까워 주로 점심시간에 들리던 곳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찾은 식당엔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재료 가격 폭등으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손 글씨로 또박또박 쓴 안내문을 읽는 동안 자주 오지 못한 미안함, 친절했던 식당 아주머니가 합리적인 가격을 고수하기 위해 감당했을 그간의 고충에 대한 안타까움 등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나눔을 실천하던 이 식당은 ‘착한 가게’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식당이 자리한 골목만 하더라도 이미 문을 닫은 다른 식당과 술집이 서너 곳에 달한다. 이제 이런 풍경은 지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역세권에도 세입자를 구하는 임대 매물이 넘쳐난다. 자영업자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국가데이터처의 통계는 몰락 중인 부산 자영업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부산 자영업자는 지난 2021년 37만 명에서 2025년 28만 9000명으로 줄었다. 4년 만에 8만 1000명가량 감소한 것이다. 다른 규모의 도시에 비해 대학이 많고 관광 산업도 상대적으로 활성화된 부산은 한때 자영업의 도시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자영업 기반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부산 자영업자 비율은 그동안 국내 대도시 중 상위권인 20~25%를 유지했지만 지난해 17%로 추락, 전국 평균 19.5%보다 낮아졌다. 더 큰 문제는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상당수도 악전고투 중이라는 것이다. 골목마다 자영업자들의 아우성이 넘쳐 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간신히 하루를 버티는 게 상당수 부산 자영업자들의 현주소다.
자영업자들이 폐업하는 가장 큰 원인은 매출 감소로 도저히 영업을 이어갈 여력조차 없어졌기 때문이다. 영업 부진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자영업 근간인 외식업은 배달 플랫폼 위주로 재편됐다. 오프라인 식당은 방문 고객 급감과 배달 수수료 부담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달라진 외식 문화는 요지부동이다. 불황 장기화로 시민 소비 여력도 급감,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장기화로 각종 자재 가격까지 폭등해 자영업 경영난을 더 가중시킨다. 최근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성비 맛집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지도 서비스까지 인기를 모으면서 자영업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공공기관과 기업의 구내식당도 자영업자들을 위협한다. 오죽하면 전국 120여 개 소상공인·자영업 단체는 지난달부터 ‘불요불급 관공서 및 대기업 구내식당 폐지를 위한 1000만 범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구내식당 운영을 중단하고 인근 식당 이용을 확대해야 골목상권 회복과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해양수산부가 부산 동구로 이전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 기대감을 높였지만 지난 2월 구내식당 운영 이후 되레 상권이 위축됐다. 상인들은 당초 매출 상승을 기대하며 직원을 추가 채용하거나 해수부 이전 호재로 급등한 임대료를 감내했으나 이젠 매출 부진에 시달릴 뿐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자영업은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실핏줄이다. 골목상권의 위축은 부산 관광산업 등 지역 경제 체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골목상권이 살아야 부산은 물론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난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오랜 시간 골목을 지킨 점포들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 빚만 더 지우는 금융 지원 위주의 정책이나 생색내기식 단기 대책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의 자영업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개인 문제라며 외면할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가 함께 해결할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진단하는 작업부터 서둘러야 한다. 공공 배달앱과 지역화폐 사용을 한층 활성화해 자영업 자생력을 높이는 방안도 절실하다. 최근 경남 창원에서 발생한 ‘동네 빵집 옆 대기업 제과점 출점 시도’와 유사한 사례를 막을 제도적 보완도 시급하다.
해외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프랑스는 작은 식당을 지원하기 위해 테라스 문화를 육성한다. 식당 야외 테이블 허가 기준을 완화하고 보행자 중심 거리를 조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본의 지자체들은 점포 하나가 아닌 해당 거리나 골목 전체를 살린다는 개념으로 자영업 활성화 정책을 펼친다. 오래된 골목 상권을 리모델링하거나 간판·조명·거리 디자인을 개선한 뒤 야시장과 작은 축제 등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공실 임대와 가게 승계를 지원하는 정책도 병행한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런 정책들의 공통점은 작은 점포 하나하나가 도시의 소중한 문화 공간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도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상권이 죽으면 도시 문화와 경제도 함께 붕괴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