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대심도, 터널이 아니라 시스템을 설계하라
만덕~센텀 구간 개통… 주변부 정체
차로 가로지르는 ‘엇갈림’ 구조적 문제
인근 교통 여건과의 부조화도 원인
전문가 제기한 문제, 제대로 반영 안 돼
민간 수익보다 ‘공공성’ 더 우선돼야
‘시민 의견 수렴 제도화’ 등 반드시 필요
부산 도심 지하 깊은 곳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북구 만덕과 해운대 센텀을 잇는 도시고속화도로(대심도)다. 길이 약 9.6㎞, 왕복 4차로, 총사업비 8000억 원가량이 투입된 대형 인프라다. 만덕에서 센텀까지 40분 걸리던 이동 시간을 10분대로 단축하겠다는 목표로 추진됐다. 취지 역시 분명했다. 상습 정체 구간의 교통을 분산하고 지상 혼잡을 줄이겠다는 구상이었다. 시민 역시 이를 기대했다. 하지만 개통 직후 마주한 풍경은 기대와 다르다. 대심도 주변은 빠져나온 차량과 이를 피해 가려는 차들이 뒤엉키며 멈추고, 서기를 반복한다. 교통 상황이 이를 뒷받침한다. 개통 이후 평일 출근 시간대 미남교차로에서 만덕 방향 통행 속도는 시속 20.6㎞에서 11.3㎞로 떨어졌다. 만덕사거리에서 구포 방향 역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터널 내에서는 차량이 빠르게 흐른다. 마치 노래 가사처럼 10분 내로 관통한다. 그러나 출구를 빠져나온 차량은 이내 정체에 갇힌다. 길은 뚫렸지만 흐름은 막힌 셈이다.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도시 교통 설계의 방향 자체를 되묻게 한다. “도대체 이 대심도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문제의 핵심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내재된 구조적 한계다. 현재 진입 방식은 중앙 차로를 통해 이뤄지면서 짧은 구간에서 여러 차로를 가로지르는 ‘엇갈림’을 유발한다. 운전자는 제한된 시간 안에 차로 변경과 감속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지체는 연쇄적인 정체로 확산된다. 무엇보다 급차선 변경이 반복되는 구조는 안전 측면에서도 취약하다. 도로 설계의 기본인 단순성과 예측 가능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결과다.
주변 교통 여건과의 부조화도 문제를 키운다. 센텀 일대는 전시·상업·관광 기능이 밀집된 지역으로 평소에도 교통 수요가 높은 곳이다. 여기에 대심도에서 빠져나온 차량이 한꺼번에 유입되며 병목이 심화된다. 향후 해운대구청까지 센텀 IC 인근에 들어서면 혼잡은 더욱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도로 확충이 교통량 증가로 이어지는 ‘유발 교통’ 현상까지 겹치면서, 정체는 구조적으로 고착될 우려가 있다. 특히 만덕 쪽은 고속도로와 연결돼 있다. 남해고속도로에서 들어올 때는 대심도와 무관한데도 낙동강 다리에서부터 꼼짝없이 묶이는 구조다. 본래 정체구간이 더 정체되는 꼴이다. 이대로라면 대심도 인근 혼잡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사례는 행정과 전문가 집단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대심도 도로는 단순한 공사가 아니라 도시 전체 교통 체계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가깝다. 그럼에도 개통 수년 전 교통영향평가 단계에서 여러 차례 제기된 구조적 문제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설계에서 걸러낼 수 있었던 위험을 사후 대응으로 넘긴 셈이다. 더욱이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수익성이 강조되는 사이, 공공 인프라로서의 균형은 뒤로 밀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이 도로는 교통 흐름의 정교한 설계보다 ‘터널 관통’ 자체에 집중한 결과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시민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도 아쉽다. 도시 교통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사업임에도 사전 설명과 의견 수렴 과정은 미흡했다. 도로는 행정의 성과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이다. 이용자의 동선과 체감 불편이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지만, 이번 사업은 그 기본을 놓쳤다.
향후 부산에는 대심도 사업이 추가로 거론되고 있으며, 지하 공간을 활용한 교통 인프라 확충이 도시 발전 전략의 하나로 논의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후 대응이 아닌 구조적 보완이다. 단기적으로는 엇갈림 구간을 단순화하고, 차선 유도와 안내 체계를 강화해 운전자 부담을 줄여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지하 구간에서부터 교통 흐름을 분산시키는 구조 개선과 함께 인근 도로와의 연계 운영, 신호 체계 조정이 병행돼야 한다. 나아가 향후 사업에서는 교통 수요 예측의 독립성과 검증 절차를 강화하고, 시민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민간투자 방식이라 하더라도 공공성 확보를 위한 장치는 분명히 해야 한다.
부산은 지형적 제약이 큰 도시다. 그만큼 도로 하나에도 더 치밀한 설계가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길을 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도시 전체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다. 설계의 빈틈은 또 다른 혼잡과 위험으로 되돌아온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설계 허점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전문가의 진단에 귀 기울이며, 시민의 목소리를 정책 중심에 놓는 일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대심도는 또 하나의 ‘거대한 병목’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만덕~센텀 대심도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대심도는 끝난 사업이 아니라 이제 검증을 시작한 사업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제를 외면하는 태도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됐는지 직시하고 바로잡는 용기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