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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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센티멘탈 밸류'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영화 '센티멘탈 밸류'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가족은 때로는 피난처가 되지만, 동시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가족의 문제는 최대한 이해하려 애쓰지만 가끔은 외면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적당히 거리가 유지될 때는 참을 수 있지만, 그 거리가 가까워질 때는 어김없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센티멘탈 밸류’는 바로 그 균열의 순간을 기어코 우리 앞에 세우는 영화다.

요아킴 트리에는 ‘리플라이즈’, ‘오슬로, 8월 31일’,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이어지는 이른바 ‘오슬로 3부작’으로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노르웨이 출신 감독이다. 그는 인물의 표정과 침묵, 음악과 리듬감 있는 편집을 활용해 인물의 내면과 트라우마를 섬세하게 시각화하는 연출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연출 세계는 신작 ‘센티멘탈 밸류’에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된다.

요아킴 트리에 ‘센티멘탈 밸류’

부녀간 깊은 균열 보여주는 작품

가족 관계 비추는 섬세한 연출로

세대를 넘는 오래된 상처 조명해

영화는 이혼한 아내의 장례식장에 아버지 ‘구스타브’가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한때 유명 영화감독이었던 그는 집을 떠나면서 두 딸 ‘노라’와 ‘아그네스’와도 멀어진 인물이다. 노라는 떠난 아버지 때문에 가족이 무너졌다고 믿으며 깊은 상처를 안고 자랐다. 이제 노라는 연극배우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로 인해 과거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게다가 구스타브가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노라에게 제안하면서 가족의 갈등은 본격화된다. 그 사이에서 동생 아그네스는 중재하려 애쓰지만, 상황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 제목 ‘센티멘탈 밸류’는 말 그대로 정서적 가치를 의미한다. 영화와 연결한다면 정서적 가치는 돈으로는 환원할 수 없는 것들, 추억과 감정이 담긴 물건의 가치를 뜻한다. 나에게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중요치 않아 보이는 것. 즉 영화에서는 가족이 함께 살았던 낡은 집이거나 어머니의 손길이 머문 꽃병일 수 있으며, 어린 시절 가족의 이야기를 몰래 엿들었던 장소 등에서 감정적 무게를 포착한다. 그리고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는 아버지와의 기억은 노라의 감정을 격랑 속으로 밀어 넣는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가족은 가까워질 수 없음을 알지만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못한다. 서로의 주변을 배회하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힘들다. 심리적으로는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고통스러운 노라는 아버지와 거리를 두려고 하며, 이제 구스타브는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었음을 딸들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이때 이 가족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간다.

구스타브의 어머니 ‘카린’은 나치 점령 시절 저항군을 돕다 체포되어 2년간 투옥되었다. 카린은 전쟁이 끝난 뒤 결혼을 하고 구스타브를 낳지만, 어린 아들을 잠시 밖에 내보낸 사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죽음은 어린 구스타브에게 설명되지 않은 상처로 남게 되었고, 어머니가 죽은 그 집에서 아내와 함께 살았고, 또 그 집에서 두 딸이 태어났다.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그가 남편과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해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이제 어머니의 이야기 혹은 자신과 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과거와 직면하려고 한다.

하지만 노라에게 아버지의 시도는 화해보다는 아직 끝나지 않은 기억을 끌어내는 일이다. 구스타브에게 예술이 정리의 방식이라면 딸에게는 여전히 현재형의 감정인 것이다.

이때 영화 속 ‘집’은 3세대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장소이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누군가는 숨기고 싶고, 누군가는 말하지 않았던 감정들까지 모두 알고 있는 집은 조용한 화자로 기능한다. 이로 인해 ‘센티멘탈 밸류’는 가족의 갈등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라 한 집안의 시간이 어떻게 다음 세대의 삶을 규정하고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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