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실리콘밸리 운동화'까지… 지역 신발 연쇄 불황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올버즈' 생산 노바인터내쇼널
매출 5년새 약 90% 곤두박질
글로벌 침체·경쟁력 약화 원인
30여 개 협력업체 어려운 상황
기술 축적 뿌리 기업 잇단 폐업
생태계 연쇄 붕괴 지원책 절실

부산에서 가장 기자 큰 생산설비를 가지고 있는 노바인터내쇼널이 위기에 빠졌다. 부산 강서구 노바인터내쇼널 전경. 장병진 기자 joyful@ 부산에서 가장 기자 큰 생산설비를 가지고 있는 노바인터내쇼널이 위기에 빠졌다. 부산 강서구 노바인터내쇼널 전경. 장병진 기자 joyful@

‘실리콘밸리 운동화’로 불리며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친환경 신발 브랜드 ‘올버즈’를 생산하던 노바인터내쇼널이 위기에 봉착했다. 2020년 베트남 공장을 철수하고 부산으로 돌아온 노바인터내쇼널은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의 모범 사례이자 부산 신발 산업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졌지만 불과 5년 만에 매출이 90% 가까이 줄었다. 업계에서는 지역 신발 생산업체들의 폐업이 늘고 있는 만큼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일 신발업계에 따르면 지역 신발 생산업체 노바인터내쇼널의 지난해 매출은 65억 원을 기록했다. 2021년에는 매출 561억 원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던 데 비해 거의 90% 가까이가 증발했다. 종사자 수도 400명에서 70여 명으로 줄었다.

부산 사상구와 베트남에 공장을 두고 있던 노바인터내쇼널은 2020년 부산 강서구 국제산업물류도시에 유턴하며 둥지를 틀었다. 당시 노바인터내쇼널은 올버즈의 인기와 더불어 승승장구하고 있었기에 지역 신발업계는 물론 부산시의 기대도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노바인터내쇼널은 부산 지역 내에서 연간 생산 능력이 180만 족으로 가장 크다. 또 국내 신발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미국 친환경 건축 인증인 ‘LEED’ 실버 등급을 획득한 생산 시설을 구축하며 주목 받았다. 이는 단순 가공을 넘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ESG 경영과 친환경 제조 공정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여기에 올버즈는 실리콘밸리의 운동화라 불리면 글로벌적 인기를 누렸다. 특히 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투자하며 그 가치는 더 높아졌다. 올버즈는 울을 이용한 신발을 만들었는데 이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회사는 노바인터내쇼널 외에는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노바인터내쇼널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원청인 올버즈가 글로벌 소비 침체와 브랜드 경쟁력 약화로 경영 위기를 맞으면서 직격탄이 날아왔다. 주문량은 급감했고, 공장 가동률은 바닥을 쳤다. 여기에 올버즈와 거래가 끊기면서 매출도 급감했다. 다른 신발 브랜드들과 연결을 하려 해도 세계적인 소비재 감소로 전체적인 신발 시장도 줄어든 상태라 쉽지 않았다.

지역 최대 규모 생산 설비를 가진 노바인터내쇼널의 위기도 위기지만 더 큰 문제는 지역 신발업계에 미칠 파장이다. 이 회사와 연결된 30여 개의 협력업체들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원청의 주문이 끊기면 하청업체는 곧바로 자금난에 봉착한다. 노바인터내쇼널이 무너지면 부산 강서구 일대 신발 부품·소재 생태계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바인터내쇼널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신발 생산량이 줄면서 부산 신발 업계의 ‘허리’ 역할을 하던 중견 신발 생산기업들이 하나둘씩 간판을 내리고 있다. 업력 20~30년을 자랑하던 토종 기업들의 최근 5~6년 사이에 폐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04년 설립돼 종업원 230명, 연매출 450억 원을 올리며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평가받던 J사는 은 시장 상황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2021년 폐업의 비운을 맞았다. 2007년 설립돼 120억 원의 매출을 올리던 S사도 2021년에 문을 닫았고, 1997년 창업해 연매출 150억 원을 기록하던 Y사는 2022년에 폐업했다. 1987년 창업해 연매출 100억 원까지 기록하던 H사도 2019년 폐업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오랜 기간 기술력을 축적해 온 부산의 뿌리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수십 년간 다져온 제조 노하우와 숙련된 인력이 하루아침에 증발하고 있는 셈이다.

신발업계 관계자는 “OEM 기업들은 속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밖으로 드러날 경우 발주가 끊길 것을 우려해 잘 드러내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며 “노바인터내쇼널과 같은 앵커 기업이 무너지면 복구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리거나,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단순히 개별 기업의 경영 실패로 치부하기엔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큰 만큼 부산시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