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은 노후 단지서 '대나무 비계' 타고 화재 번졌다 [홍콩 아파트 화재 참사]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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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밀집 32층 건물 7동 불타 피해 커
비계 외 외벽 가연성 소재 불길 키워
거주자 36.6% 고령, 대피 어려웠을 듯
당국 "형사 사건 가능성 배제 안해"

26일(현지 시간) 홍콩 북부 타이포(Tai Po) 구역의 32층짜리 주거용 고층 아파트단지인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불이 나 27일 오후 3시 기준 사망자 55명과 실종자 200여 명이 발생한 가운데, 홍콩 소방 당국이 부상자를 구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6일(현지 시간) 홍콩 북부 타이포(Tai Po) 구역의 32층짜리 주거용 고층 아파트단지인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불이 나 27일 오후 3시 기준 사망자 55명과 실종자 200여 명이 발생한 가운데, 홍콩 소방 당국이 부상자를 구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화재로 27일(현지 시간) 오후 현재 사망자 55명과 실종자 200여 명이 발생한 홍콩 ‘웡 푹 코트’(Wang Fuk Court) 아파트단지는 준공한 지 40년이 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노후 밀집 건물에 설치된 보수 공사용 대나무 비계(작업자 이동용 간이 구조물)와 가연성 소재들을 타고 불길이 빠르게 번지면서 참사 규모를 키운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27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과 성도일보 등 홍콩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홍콩 초고층 아파트 단지 화재는 홍콩 도심에서 떨어진 북부의 교외 타이포(Tai Po) 구역에서 발생했다. 중국 본토와의 경계에 있는 타이포 구역에는 약 30만 명이 거주하며 정부 보조의 공공 분양주택들이 밀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화재가 난 32층짜리 주거용 아파트 단지인 ‘웡 푹 코트’ 역시 홍콩주택위원회가 개발한 것으로 파악됐다.

‘웡 푹 코트’는 1983년 입주를 시작해 주민들이 거주한 지 최소 42년이 된 노후한 공공 아파트 단지로, 2000가구에 주민 약 4800여 명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러한 홍콩 특유의 밀집형 건축물이라는 점이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중국 남방주말 등 매체들에 따르면 홍콩 소방당국은 전날 화재 관련 브리핑에서 “초기 추정으로는 불이 붙은 잡동사니와 대나무 비계가 바람 영향으로 인근 건물로 날아갔고, 화염이 ‘웡 푹 코트’ (8개 동 가운데) 7개 동으로 번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사 중인 건물 외벽을 따라 설치하는 비계는 현재 통상적으로 금속 제품을 쓰지만, 홍콩에서는 여전히 대부분 대나무 비계가 사용된다. 과거부터 대나무 비계를 활용해왔으나 이제 금속 비계를 설치하고 있는 중국 본토보다 전환이 늦은 셈이다.

홍콩 당국 역시 부러지거나 불이 붙을 수 있는 대나무 비계의 위험성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2019∼2024년에만 대나무 비계 관련 작업자 사망 사고가 22건 발생하자 홍콩 정부는 올해 3월 대나무 비계를 현장에서 점진적으로 퇴출하고 공공 건설 공사의 50%에 금속 프레임 사용을 의무화한다고 발표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그럼에도 대나무 비계 화재는 올해만 최소 3건 발생했다.

이번 화재와 관련해 과실치사 혐의로 공사 관계자 3명을 체포한 홍콩 경찰은 외벽에 설치된 보호망과 방수포, 비닐 등이 방화(防火)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한편, 공사용 우레탄폼이 화재를 급속하게 번지게 했을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또한 해당 아프트 단지에 사는 주민들 중 고령층이 많다는 점도 인적 피해를 키운 또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2021년 홍콩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 아파트의 총 주민은 4643명이고, 이 가운데 36.6%가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그만큼 불이 빠르게 번졌다면 밀집 세대에서 고령 거주자들의 대피는 더 어려웠을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만 홍콩 경찰은 이번 화재와 관련해 ‘형사 사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범죄 혐의점을 찾아볼 것임을 시사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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