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성벽 따라 걷는 붉은 단풍 “가을이 아름답구나”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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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한 바퀴

지난해 조성 진주대첩역사공원 깔끔
남강 따라 성벽 안쪽에는 ‘낙엽잔치’
서장대 아래 음악분수 풍경 꽤 훌륭
진주박물관 ‘암행어사 특별전’ 흥미

단풍으로 가을 가득한 경남수목원
메타세쿼이아·미국풍나무 길 핫스폿

경남 진주시를 대표하는 관광지는 진주성이다. 대부분 여행객은 촉석루나 진주박물관만 둘러보지만 진주성의 가을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총 길이 1760m의 성벽이다. 늦은 가을 진주 시내와 남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성벽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가을을 느끼는 일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얻기 힘든 경험이다. 여기에 단풍나무가 한껏 무르익어 늦가을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경남수목원까지 둘러보면 더할 나위가 없다.


경남 진주시 진주성 성벽 둘레길. 낙엽이 잔뜩 쌓여 깊어가는 가을을 호젓하게 즐기기에 제격이다. 남태우 기자 경남 진주시 진주성 성벽 둘레길. 낙엽이 잔뜩 쌓여 깊어가는 가을을 호젓하게 즐기기에 제격이다. 남태우 기자

■진주성 한 바퀴

거의 10년 만에 진주성을 찾았더니 많은 게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진주성 앞에 지난해 새로 조성된 ‘진주대첩 역사공원’이다. 임진왜란 당시 실제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는데, 이전에는 식당 등이 있던 공간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지하에는 주차장이 있어 진주성 관람객의 골칫거리였던 주차난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게 됐다.

촉석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가자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촉석루와 기타 유적을 살펴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진주성 안을 가득 채운 늦가을 풍미를 즐기러 온 사람이다.

한 여행객이 낙엽이 가득 쌓인 경남 진주시 진주성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여행객이 낙엽이 가득 쌓인 경남 진주시 진주성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가을이라 썰렁해 보이기 이를 데 없는 촉석루에는 오르지 않고 곧바로 남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안쪽 길을 걷는다. 성벽 너머 남강 물길은 쓸쓸해 보이지만 반대쪽 성벽 안 숲속은 화려한 낙엽의 잔치로 신나 보인다. 나무마다 노랗고 빨간 단풍잎이 가득 달렸고, 곳곳에 넓게 펼쳐진 잔디마당에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진 나뭇잎이 켜켜이 쌓여 땅을 빨갛게 물들였다.

일부러 잔디마당에 들어가 푹신하게 쌓인 나뭇잎을 밟아본다. 바삭바삭. 귀를 간질이는 이 소리야말로 깊어가는 가을을 상징하는 소리가 아닐까. 산책하러 나온 두 어르신이 낙엽 앞에 서서 추억을 회상하면서 프랑스 시인 레미드 구르몽의 시를 읆는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단풍으로 물든 나무, 낙엽이 쌓인 잔디마당 그리고 도도히 흐르는 남강이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게 한다. 남태우 기자 단풍으로 물든 나무, 낙엽이 쌓인 잔디마당 그리고 도도히 흐르는 남강이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게 한다. 남태우 기자

낙엽이 가득 쌓인 잔디마당에 설치된 그네형 벤치에 두 남녀가 앉았다. 몸을 딱 붙이고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속삭인다. 그들의 대화를 좀 더 가까이서 듣고 싶은 듯 나무에 그렁그렁 매달렸던 나뭇잎 하나가 둘의 발 아래로 똑 떨어진다. 그들을 둘러싼 공기에도, 그들의 대화에도, 그들의 어깨에도 그들의 사랑만큼이나 짙은 가을이 잔뜩이다.

두 연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뒤로 하고 성벽을 따라 더 걷는다. 성벽이 남강과 헤어지는 지점이 나타난다. 그곳에 작은 목조기와집인 서장대가 나타난다. 성벽 바깥쪽 아래에는 음악 분수가 있는데 야간에 서장대에서 바라보는 분수 풍경이 꽤 훌륭하다고 한다. 굳이 음악 분수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는 진주시 서쪽 신안동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 고색창연한 풍경은 아니지만 눈이 시원해지는 경치를 담을 수는 있다.

낙엽이 잔뜩 쌓인 경남 진주시 진주성 성벽 둘레길. 남태우 기자 낙엽이 잔뜩 쌓인 경남 진주시 진주성 성벽 둘레길. 남태우 기자

진주성 성벽 산책의 하이라이트는 서장대에서 시작한다. 여기에서부터 북장대를 거쳐 공북문을 지나 촉석문까지 이어지는 성벽이 진주성에서 가장 호젓하고 아름다운 구간이다. 서장대에서 진주성 안쪽을 바라보니 붉게 물든 단풍이 온 숲을 가득 메우고 있다. 북장대로 가는 길 초입은 내리막이다. 나지막한 성벽과 그 너머로 보이는 평화로운 시내 그리고 둘 사이를 가로막는, 노랗게 물든 단풍이 달린 나무. 꽤 멋진 한 폭의 그림이다.

북장대까지 이어지는 성벽은 공원처럼 꾸며진 남강변 성벽과 분위기가 다르다. 좁은 데다 안팎이 온통 나무로 덮여 있어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기분마저 느끼게 한다.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분위기가 그대로 보존된 것 같다고 하면 역사에 무지한 여행객이라고 핀잔을 들을까.

스페인 마드리드 북부에 아빌라라는 도시가 있다. 중세에 이슬람군과 기독교군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웠던 요충지였다. 당시를 상징하는 유적인 성벽, 스페인어로는 무랄라가 유명한 관광지다. 늦은 가을 시내를 에워싼 성벽에 올라가 한 바퀴 돌아본 인상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곳 진주성에서 놀랍게도 아빌라의 성벽에서 느꼈던 기분을 다시 맛보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여행객들이 경남 진주시 진주박물관 임진왜란 전시품을 둘러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여행객들이 경남 진주시 진주박물관 임진왜란 전시품을 둘러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성벽에서 내려와 진주성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진주박물관으로 향한다.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을 주제로 마련된 이색 공간이다. 게다가 마침 ‘암행어사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다른 곳에서는 관람하기 힘든 흥미로운 주제다. 암행어사 제도를 설명하고 누가 유명한 암행어사였는지 소개하는 공간이다.

진주성에서 나와 진주논개시장 안에 있는 백년식당에서 지역 특산음식인 진주육회비빔밥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손님으로 북적인다. 맛있는 음식은 아무리 불편한 장소에 있더라도 인기다.


■경남수목원

평일인데도 경남수목원 주차장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 대형버스를 타고 단체관광을 온 노인들도 적지 않다. 소풍 바구니와 돗자리를 들고 온 가족도 보인다. 물론 손을 꼭 잡은 연인들도 빠지지 않는다.

경남수목원은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에 자리 잡은 자연생태 종합 학습체험장이다. 총 면적이 102ha(약 30만 평)에 이를 정도로 넓은 곳이다.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깨끗한 공기와 가을 정취를 즐기기에 적당한 장소다.

한 여성이 빨갛게 물든 단풍에 반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여성이 빨갛게 물든 단풍에 반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남태우 기자

느긋하게 걸으면서 풍경을 즐기려면 선인장원~유아숲체험원~야생동물관찰원~전망대~민속식물원 코스를 고르면 된다. 짧은 코스를 원하는 사람은 야생동물관찰원에서 전망대로 가지 말고 선인장원을 거쳐 바로 내려오면 된다.

열대식물원 곁을 지나자 작은 연못이 있는 화목원이 나타난다. 연못 분위기는 환상적이다. 수면에는 시든 연잎과 나무에서 떨어진 갈색 잎들이 덮였다.

빨갛게 물든 경남수목원 메타세쿼이아 길. 남태우 기자 빨갛게 물든 경남수목원 메타세쿼이아 길. 남태우 기자

연못 주변에서는 소풍을 나온 유치원생들이 재잘거린다. 인솔 교사는 힘들게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연못 주변은 온통 연한 갈색과 노란 단풍으로 물들었건만, 바로 뒤편 단풍나무에서는 빨간 단풍잎이 하늘거리건만, 아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늦가을 경남수목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두 곳이다. 이유는 물론 사진이다. 하나는 가을이면 잎이 빨갛게 변하는 메타세쿼이아 길과 온 세상을 빨갛게 물들인 잎으로 가득한 미국풍나무 길이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전남 담양군과 비교하면 매우 짧지만 그래도 태곳적 원시림 같은 느낌을 풍긴다. 흙길을 밟으며 숲 산책로를 천천히 걷는 기분은 꽤 이색적이다. 관람객들은 곳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환한 미소가 담긴 사진을 찍느라 또 다시 분주하다.

노부부가 가을이 깊어가는 경남수목원 단풍나무 길 사이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노부부가 가을이 깊어가는 경남수목원 단풍나무 길 사이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짧은 메타세쿼이아 길에 비해 미국풍나무 길은 꽤 길고 호젓하다. 비현실적인 풍경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 노부부가 나란히 단풍길을 걸어간다. 그들이 걸어온 세월도 단풍나무처럼 빨갛게 물들었으리라.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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