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과 ‘제공’… 단어에서 드러난 한일 인식 차 [마루타 기자의 부산 후일담]
한국인 절반 이상 긍정적 인식
일본에선 응답자 35.4% 불과
마루타 미즈호 서일본신문 기자
지난 9월 일본 내각부는 장기 기증 의사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뇌사나 심정지로 사망 판정을 받았을 때 장기 기증 의사를 운전면허증 뒷면 등에 표시하고 있는 사람이 응답자의 20%에 달했다. 이는 직전의 조사(2021년)에 비해 약 2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4년 새 2배나 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긴 하나, 실제 기증자 수에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여전히 큰 차이가 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최근 한국 역시 일본에 비해 장기 기증이 보편화돼 있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 놀랐다. 한국에서 뇌사 시 장기 기증이 법적으로 가능해진 것은 1999년이다. 일본(1997년)에 비해 법제화가 오히려 2년이나 늦었다. 본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가족의 동의로 기증이 가능하다는 점 등 법 제도는 일본과 비슷하다. 그러나 2023년 한 해 동안의 장기 기증자는 한국이 인구 100만 명당 9.3명이었던 반면, 일본은 1.2명에 그쳤다. 기증이 적은 일본에서는 장기 이식을 받기까지 수년을 기다려야 하며, 그 사이에 사망한 사람도 많다.
이번 달 중순, 부산에서 열린 한일 장기 기증 활성화를 위한 국제 학술 세미나에 참석했다. 본격적인 학술 회의에 앞서 한국 장기기증협회가 사전에 실시한 한일 양국의 장기 기증 인식 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두 나라의 국민 각 7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기 기증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변한 한국인은 응답자의 절반 이상(56.5%)인 것에 비해 일본은 35.4%에 머물렀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세미나의 발표를 통해 장기 기증자 가족들의 심경이 한일 양국 간 서로 다르다는 점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일본 나가사키현 복지보건부 담당자는 “(일본에서는) 뇌사 상태에서는 심장이 뛰고 체온도 있기 때문에, (남겨진 가족 입장에선) 장기를 기증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에서는 장기 기증을 개인(가족)의 사적인 일이라기보다 사회적 행위라는 점에 인식의 무게를 두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실제로 사용하는 단어부터 차이가 났다. 일본에선 ‘장기 제공(提供)’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한국에선 ‘장기 제공’보다 사회적 공헌의 의미가 강한 ‘장기 기증(寄贈)’이라는 단어를 더 흔히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사회공동체 역시 장기 기증자와 그 가족들의 ‘공헌’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잊지 않았다. 이날 세미나 이후 기증자 가족들이 참여하는 작은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서 기증자 가족들에 대한 표창 수여식이 열리기도 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언제든 나에게도 선택을 요구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