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후보님, 헌법수호 의지 있습니까”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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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구조와 국민 권리·의무 규정한 최상위 법
헌재, “헌법수호 의무 저버렸다”며 파면 선고
탄핵사건으로 헌법에 대한 국민 관심 높아져
6월 대선 후보자 검증… 헌법 이해·준수 필요

지난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대법정.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파면의 효력은 즉시 발생했다.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로부터 122일, 그해 12월 14일 국회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접수된 날부터 111일만에 탄핵심판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단체들은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나라가 두 조각 날 것처럼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헌재 선고를 기점으로 큰 충돌 없이 그동안 깊어졌던 상처가 아물어가는 듯하다. 당초 우려했던 탄핵반대 측의 극단적 행동 등은 발생하지 않아 국가적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 모든 사회 현상에는 해석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있기 마련이다. 탄핵심판 과정에 극심한 국민 분열과 과열로 인해 국력이 막대하게 낭비됐다는 점은 너무나 아쉽다. 특히 계엄령으로 인한 국가 신인도 하락이나 국제 경쟁력 약화 등은 뼈아픈 부분이다.

이러한 부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로 조명된 헌재의 역할과 선고 결과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이해는 긍정적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헌재는 탄핵 찬반 양쪽의 주장과 논리를 모두 수렴하고, 오직 헌법 정신에 따라 선고문을 작성했다. 탄핵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 국가의 틀을 규정하고,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관심이 엄청나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최근 시민단체의 기자회견문에는 헌법 관련 조항을 명시하고, 자신들의 논리와 주장을 펼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하고 법적 테두리 안에 있다는 논리를 관철하려는 방편으로 헌법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사)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경남지부는 장애인의 날을 앞둔 지난 9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헌법과 법률에 보장하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 헌법 11조와 헌법 35조 5항을 제시했다.

이들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11조를 제시하면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국가는 장애인의 복지와 권익을 증진할 의무를 가진다’는 34조 5항을 근거로 들었다. 이들은 헌법에 명시한 평등권 실현과 이동권 보장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번 회견으로 이들의 주장이 모두 관철된 것은 아니지만 헌법에 근거한 주장과 논리를 명확하게 밝힌 셈이다.

흔히 헌법은 법위의 법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에게 ‘법은 어렵다’는 선입관이 있다. 헌법은 그 위에 있다는 생각때문에 엄청 어려울 것으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계기로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 구성요건과 내용을 한 번쯤 이해하고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점이다. 헌법을 이해하면 윤 전 대통령이 탄핵인용 이유가 무엇인지 간단하고, 명료하다.

당선된 대통령이 가장 먼저하는 일은 취임 선서다. 윤 전 대통령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면서 국민 앞에 다짐했다. 선서문의 첫 번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게 헌재의 판단 요지다.

헌재는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은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해 헌법수호 의무를 저버렸다”며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선고 이유를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면됐다. 파면된 역대 대통령의 공통된 결격 사유가 헌법수호의지 부족이다.

우리는 헌법이 ‘먼 이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보험이나 다름없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통치구조와 국민의 권리·의무를 규정한 최상위 법이다. 국민이라면 이번 탄핵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통치구조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헌법을 챙겨봐야할 필요성이 생겼다. 법학도나 법률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생활 자체가 헌법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오는 6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후보 검증과정에 헌법 이해도와 수호 의무, 수호 의지 등에 대한 질문이 잇따를 전망이다. 후보가 아니더라도, 국민이라면 한 번쯤 헌법 조문을 읽어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kks66@busan.com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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