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민주주의 수호는 기본, 그 이상을 바란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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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상 지역미래팀장

계엄·탄핵 등이 대선 이슈 잠식
민주주의는 국가 성장의 출발점
지속가능한 미래 논의도 필요해
지역분권 등 다양한 가치 다뤄야

국가 공동체의 발전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나라마다 구체적인 모양새는 다르겠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선진국들은 대체로 일정한 패턴으로 발전했다.


첫 단계는 공동체의 안정이다. 정국이 안정되어야, 법과 제도의 틀이 잡히고 경제도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제도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경제 발전이 누적되다 보면, 중산층이 늘어난다. 중산층이 늘면, 민주주의가 고도화된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면 빈부격차 해소, 환경 보전, 지역 분권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고민하는 단계에 이른다.

유럽 선진국들은 각 단계를 차근차근 밟았고, 우리는 빠르게 통과했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내전을 겪으며 첫 단계 단추도 끼우지 못하고 있다. 중남미 일부 국가는 제도적 민주화만 이뤘을 뿐, 중산층이 늘지 못하고 발전이 멈췄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짧은 계엄은 어마어마하게 긴 여진을 불러왔다. 그리고 지난 4일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이제 우리는 새 대통령을 찾고 있다. 당연히 계엄 여파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선 계엄에 대한 평가가 표심을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일 것이다. 너무 명확한 선거 어젠다가 있다 보니, 다른 이슈들은 사라지고 선거판이 조용해진 느낌마저 든다.

좌우를 떠나서 많은 이들이 이번 대선을 특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대한민국 정체성을 확립하는 자리라는 거다. 어떤 이는 내란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고, 다른 이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어느 선거보다 많은 유권자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투표장을 향할 듯하다.

지금 시국은 국가의 발전이 단계별로 이뤄진다는 걸 보여준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 의식이 퍼지니, 지속가능한 성장을 논하는 말들이 사라졌다. 이 시국에 기후 위기, 부의 양극화, 수도권 집중 등을 이야기하는 건 사치로 느껴진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인 지속가능한 성장이 쉽지 않은 이유다.

새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극단적 이념화가 심화되고, 민주주의 작동 원리인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면, 대한민국은 더 흔들릴 것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은커녕 경제 자체가 늪에 빠질 것이다. 좌우를 떠나 모두가 지난 겨울의 혼란이 재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럼에도 국가 발전 단계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계엄은 지속되지 못했고, 다수의 시민은 평화적으로 탄핵 찬반을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렸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당시엔 격렬한 시위 속에서 4명이 숨졌다. 이번엔 모두가 탄핵 결정을 수용했다. 우리는 오히려 위기가 발생해도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 회복력을 과시했다.

몇 발짝의 뒷걸음질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다. 이는 우리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고민하고 길을 찾아야 하는 단계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계엄과 탄핵에 대한 평가가 후보를 정하는 가장 큰 이슈겠지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민주주의 수호만 하고 있을 정권이 어디 있겠는가.

대선 기간 중 내놓은 공약은 차기 정권의 정책이 되고, 후보자의 말은 정권의 정체성이 된다. 이 때문에 지금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말들이 오가지 않는다면, 다음 정권에서 관련 정책들은 후순위로 밀리며 소홀하게 취급될 수 있다. 치밀한 정책을 내놓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후보들은 정책 방향이나 비전이라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유독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게 지역균형발전이다. 보통의 선거에선 지역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정당과 후보들은 지역 민심을 듣고 맞춤형 공약을 내놓는다. 이번엔 모든 정당이 지역 민심에 덜 예민한 것 같다. 내실 있는 지역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도 없다.

단기간에 명확한 정책을 내놓기 어려울 수 있다. 대신 수도권 집중화 해결, 지역 분권, 지역 경제 활성화 등에 대한 명확한 의지와 비전이라도 보여주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지역 불균형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지역균형발전만큼 확실한 목표도 없다.

사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려면 민주주의 수호는 기본이다. 그 이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견고히 하면서도, 지역 불균형의 과제를 풀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리는 대통령을 만나보고 싶다. 많은 시민이 비슷한 바람을 품는다면, 후보들의 입에서 진정성 있는 말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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