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KO 머신' 조지 포먼의 명복을 빌며
변현철 문화부 독자여론팀장
1974년 알리와 ‘킨샤사 세기의 대결’ 유명
전 세계 100여 개국 중계된 최고의 명승부
화끈한 한 방으로 40연승 달성 ‘무쇠 주먹’
45세 최고령 헤비급 챔피언 화려한 기록도
1974년 10월 30일 아프리카 자이레(현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에서 프로복싱 역사상 최고의 경기가 펼쳐졌다. ‘세기의 대결’로 불렸던 조지 포먼과 무하마드 알리의 세계 헤비급 타이틀매치였다. 당시 챔피언은 조지 포먼, 도전자는 무하마드 알리였다.
훗날 복싱계의 거물로 성장한 돈 킹이 두 선수의 라이벌전이 벌어진 장소가 아프리카여서 이 경기를 ‘정글의 혈투’라 불렀고 아직까지도 전 세계 복싱 팬들에게는 명승부로 꼽히고 있다.
이 두 선수와 함께 당시 헤비급을 평정했던 또 하나의 복서는 조 프레이저였다. 화끈한 복싱 스타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프레이저는 전광석화와 같은 레프트훅이 전매특허였다. 1971년 미국 뉴욕의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알리와의 헤비급 타이틀매치 때 15라운드에서 다운을 빼앗아낸 것도 레프트훅이었다. 프레이저는 결국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알리에게 첫 패배를 안겼다.
챔피언에 오른 프레이저의 벨트를 빼앗은 선수가 바로 포먼이었다. 포먼은 1973년 프레이저와 헤비급 타이틀매치에서 1~2라운드 동안 6차례 다운을 빼앗은 끝에 2라운드 KO승으로 정상에 등극했다. 반면 프레이저는 1976년 포먼에게 두 번째로 진 후 은퇴했다.
1974년 10월 30일의 경기는 챔피언 자리를 탈환하려는 알리와 방어하려는 포먼이 맞붙은 상황이었다. 알리는 빠른 몸 동작과 스피드로 상대의 주먹을 잘 피하는 전형적인 아웃복서였다. 반면, 주먹의 힘과 강도가 알리보다 우세한 포먼은 결정적인 주먹 한 방으로 경기를 끝내는 전형적인 인파이터였다.
당시 32세의 알리는 복서로서 황혼기에 접어들었고, 25세의 포먼은 40연승을 달리며 무적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포먼의 우세가 점쳐졌다.
두 복서는 맞대결의 대가로 각각 500만 달러씩의 파이트머니를 받았다. 돈은 자이레의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에게서 나왔다. 그는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 대결을 유치했다.
이 경기는 미국 시청자들의 편의를 위해 현지 시간으로 새벽 4시 30분에 열렸는데, 현지 관중 6만여 명이 역사적인 경기를 보기 위해 달빛 아래 모였다. 이 경기는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중계되기도 했다.
이날 경기에서 2라운드부터 포먼의 공세가 시작됐다. 알리는 빠른 스피드로 파워풀하지만 느린 포먼의 펀치를 피하는 전법을 활용했다. 또한 링 로프의 반동을 이용한 수비와 지능적인 클린치로 포먼의 펀치를 피했다. 그래서 포먼은 알리에게 특유의 살인 펀치를 제대로 맞출 수 없었다.
결국 둘의 경기는 길어졌고, 포먼은 이 경기 전까지 5라운드 이상으로 가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점점 피로해졌다. 이후 포먼은 8라운드 후반 알리에게 결정적인 펀치 한 방을 맞고 다운된 후 일어나지 못했다. 끝내 승부는 알리의 8회 KO승이었다. 이 경기는 포먼의 생애 첫 패배였다. 포먼은 알리와 줄곧 재대결을 원했지만, 알리가 2016년 사망할 때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이처럼 세계 헤비급 정상을 군림하며 화려한 이력을 뽐냈던 ‘KO 머신’ 포먼이 지난달 향년 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9년 프로 데뷔 후 1997년 은퇴할 때까지 포먼은 76승(68KO) 5패를 기록했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힘들게 자랐던 포먼은 어린 시절 폭행과 절도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살았지만, 직업학교에서 복싱을 접한 뒤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1cm의 큰 키 등 탁월한 신체 조건 덕분에 헤비급 강자로 올라섰던 포먼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복싱 헤비급 결승에서 당시 소련의 요나스 체풀리스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69년 프로 데뷔를 한 포먼은 헤비급 타이틀을 알리에게 내준 뒤 슬럼프를 겪었고 마침내 1977년 지미 영에게 판정패를 당한 후 은퇴했다.
이후 그는 10년간 목회자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1987년 38세의 나이로 복귀를 선언한 포먼은 1994년 45세의 나이로 자신보다 19세 어린 마이클 무어러를 꺾으며 최고령 헤비급 챔피언 기록을 수립했다. 종전 기록을 가지고 있던 저지 조 월컷이 세운 37세보다 8세 많은 나이였고, 챔피언과 도전자 중 나이 차이가 가장 큰 기록이었다. 포먼은 “프레이저와 첫 헤비급 타이틀전보다 더 특별한 경기였다”고 말한 바 있다.
포먼의 별세 소식에 1970년대 복싱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명승부를 펼쳤던 알리와 프레이저의 경기 모습도 문뜩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알리는 2016년 향년 74세로, 프레이저는 2011년 6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 복싱을 무척 사랑했던 기자의 추억 속에 ‘불멸의 영웅’으로 자리 잡고 있는 세 복서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어본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