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트럼프와 머스크의 자유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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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우리에겐 낯선 미국 정경유착
서양의 근대화 과정에서 기인

대통령·자본가의 각별한 밀착
중세 왕·교황의 관계 연상시켜

타자에 대한 윤리 부재의 정치
위험과 혼란 초래할 가능성 커

대선부터 취임까지 도널드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보여주고 있는 끈끈한 정경유착을 두고 그들의 만남을 “혁신”이라 부르며 선망하는 시선도 생겨난 것 같다. 미국의 정치는 기업이 정치인에게 거액을 공개 기부하는 사례가 흔하고 총기협회와 같은 로비단체의 활동도 강력하기에 정경유착을 꺼려온 우리에겐 낯설다.

소위 근대화를 이뤘다고 평하는 대다수 국가는 사회를 지탱하는 두 축으로서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나란히 자리한다. 한국은 기적과도 같은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화를 성취해 내며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국가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사회라는 것은 좌우파를 불문하고 동의하는 부분일 것이다. 대부분의 비서구권 국가에게 근대화는 과거사와의 단절로 인식된다.

서양사에서도 근대는 중세와의 선명한 단절로 이해되곤 한다. 신 중심 세계관에서 인본주의 세계관으로의 이행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유럽의 근대화는 내재적이라는 점에서 비서구권의 근대화와 다르다. 서양 근대사는 중세와 완전히 결별하지 않았다. 반면 비서구권의 근대화는 마치 유성과 충돌한 사건처럼 내재적이기보다 외재적인 충격으로 보인다. 이는 비서구문명이 지체된 사회였기 때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서양사에서 중세와 근대는 연장선에 있다. 이는 ‘중세-신-성경-기독교-구원’과 ‘근대-자본-헌법-민주주의-자유’라는 나란한 병렬관계로 정리된다. 거친 도식화지만 살을 발라내고 뼈대만을 남겨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서양 중세의 정치권력은 왕과 영주에게 세속권력이, 교황과 성직자에게 도덕권력이 분리된 세계였다. 세속권력과 도덕권력은 종종 갈등을 빚더라도 교황이 우위에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근대는 종교의 자리를 경제로 대체했다. 상이해 보이지만 도덕(좋음)의 가치가 기독교 교리에서 양적 공리주의와 자유방임주의로 바뀐 것이다. 구도의 핵심에 놓인 성경과 헌법은 인간에 의해 구성된 것이지만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며 신과 자본을 지탱한다. 신과 자본은 실재적으로 감각될 수 없기에 그를 대표하는 사람, 교황과 자본가, 더불어 성경과 헌법에 접속할 수 있는 성직자와 법률가가 정치권력집단이 된다. 자본이 시공간에 구속되지 않는 신과 같은 지위를 누림과 동시에 인간처럼 권리주체가 되는 것은 ‘법인격’ 개념에서 비롯된다.

서양의 정치사상은 중세 정치신학에서 근대 정치경제학으로 변환되었다. 철학적으로 빈곤한 정치는 괄호 쳐두고 신학과 경제학이 핵심적이다. 민주주의를 ‘민심이 천심이다’와 같이 해석할 수 있지만 사실 그러한 말씀의 모토는 헌법이 담당한다. 성경 말씀처럼 헌법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순종은 필수적이다. 말씀의 실천은 다수결이라는 덕을 고정시켜 놓고 이를 선거라는 ‘훌륭한’ 행위를 통해 품성으로 습관화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실천과 닮았다.

이제 트럼프와 머스크 관계로 돌아가 보자. 쿵짝이 잘 맞던 왕과 교황이 있던 것처럼 대통령과 자본가로 연상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원적 세계관은 유럽문명에서 나타난 매우 독특한 형태였고 조선을 비롯한 한국사에서 또한 동아시아 정치사상에서 존재를 상상하기 어렵다. 현세를 부수적으로 취급할 수 없는, 치(治)와 덕(德)의 영역은 분리가 아닌 통합된 일원적 세계관이었기 때문이다.

머스크의 화성 이주 계획과 테라포밍(환경 개조)은 제국주의 시기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를 개척하고서 행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예컨대 브라질산 고무나무를 말레이시아로 가져와 국토 전체를 고무판으로 만들어버린 생태재앙적 프로젝트를 동일한 발상으로 화성에 위치만 옮겼을 뿐이다. 그가 지구를 넘어 화성을 노래하는 것 역시 현상계 밖의 초월계를 갈망했던 서양 지성사의 이원적 사고에 기인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트럼프 당선과 머스크 합체는 현대 미국 ‘덕치’의 논리적 귀결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의 도덕은 이기적 개인의 효용 극대화여서 타자에 대한 윤리가 없다면 승자 독식과 불평등 심화를 수반하며 이는 자국과 세계 정치 위험과 혼란의 부메랑이 된다. 물론 정치의 최우선 덕목인 청렴함과 이타심을 추방시킨 윤리 상실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종속적 친화성은 당위적 주장이 아니다. 윤 대통령과 극우 세력이 특히 찬양하는 미국식 민주주의에서 정부는 자유시장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비판에 가깝다. 그럼에도 계엄사태로 민생과 국가경제를 박살 낸 현 정권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는커녕 오히려 그 사상적 토대에 따르면 가장 부도덕한 최악의 정치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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