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경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첫 국가배상 판결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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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법 "15명에 18억 지급하라"
항소심 재판부, 소멸시효 달리 봐

부산법원종합청사. 부산일보DB 부산법원종합청사. 부산일보DB

한국전쟁 당시 경남 산청과 함양 지역에서 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이 사건 발생 74년 만에 처음으로 항소심에서 국가배상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가장 큰 이유는 소멸시효 기산점에 대한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23일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데는 앞서 국가 배상 결정이 내려진 거창 양민 학살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부산고법 민사5부(부장판사 김주호)는 산청·함양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 1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8억 2583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산청·함양 민간인 학살은 1951년 2월 7일 산청군 금서면, 함양군 휴천면·유림면 일대 주민들이 공비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국군이 민간인 705명을 무차별 사살한 사건이다.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 이후 희생자 명예 회복은 이뤄졌으나 유족들에게 금전적 보상은 일절 없었다. 이에 유족들은 “공무원인 국군에 의해 자행된 불법행위라 정부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지난해 3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1심에선 국가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채권은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장기소멸시효), 민법상 불법행위의 손해배상 청구 단기 소멸시효는 3년이라는 점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유족들이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이 끝난 2010년 6월 30일로부터 3년 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이 산청·함양 사건과 유사한 거창사건에 대해 “집단희생 사건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채권에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2022년 10월을 유족들이 손해배상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봤다.

재판부는 “이전까지 구제의 기회가 부여되었음에도 원고들이 이를 방기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며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경우 채권자가 불법행위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일반 채권에 비해 보호의 필요성이 크다는 사실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위자료 액수는 다른 민간인 희생 사건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사망자 본인 1억 원, 당시 생존한 사망자의 배우자는 5000만 원, 부모와 자녀는 각 2000만 원, 형제자매는 1000만 원으로 정했다.

하지만 정부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현재 유족은 164명이 생존해 있다. 산청·함양 사건 유족회는 이번 상고심에서 승소할 경우 나머지 유족들도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재생 산청·함양 사건 유족회장은 “여전히 국가는 민간인 학살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상고했다”며 “만약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다면 나머지 유족들도 다 같이 소송에 동참할 계획이다. 이전에 유족 2명이 소송을 진행하다가 돌아가신 만큼 대법원 최종 판단을 통해 국가는 특별법을 제정해 남은 유족에게 일괄 배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0월 신성범 국민의힘 의원은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거창사건 등 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 등을 목적으로 설립·운영되는 법인의 위령사업 등에 필요한 비용을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는 항목을 신설했다. 유족회의 위령사업은 그동안 정부 지원을 받아 진행되어 왔으나 이번 발의를 통해 법적 근거를 구체화하고 유족회 재정적 지원을 명확히 하게 됐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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