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타고도 만날 수 있다 '푸른 초원 위 양 떼 풍경' [별별부산] ⑧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해운대수목원]

부산시가 무료 운영하는 공공 수목원
미니 동물원에 암컷 양 10마리 사육
타조·당나귀는 타 지역 농장으로 이사

자연 방사로 수목원 곳곳 떼 지어 다녀
자녀 동반 가족 방문객들에 인기 높아
3~4마리 임신 중…내년엔 식구 늘 듯

부산 해운대구 석대동 해운대수목원 구석구석을 떼 지어 다니고 있는 양 떼. 타조와 당나귀가 타 지역 목장으로 거처를 옮긴 뒤 수목원에는 암컷 양 10마리만 살고 있다. 해운대수목원 제공 부산 해운대구 석대동 해운대수목원 구석구석을 떼 지어 다니고 있는 양 떼. 타조와 당나귀가 타 지역 목장으로 거처를 옮긴 뒤 수목원에는 암컷 양 10마리만 살고 있다. 해운대수목원 제공

해운대수목원 내 언덕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양 떼. 자연 방사 방식으로 키우는 양들은 수목원 곳곳을 무리 지어 다니며 방문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희돈 기자 해운대수목원 내 언덕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양 떼. 자연 방사 방식으로 키우는 양들은 수목원 곳곳을 무리 지어 다니며 방문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희돈 기자

드넓게 펼쳐진 풀밭 위로 수많은 양이 떼를 지어 거닐고 있다. 티 없이 맑은 하늘엔 군데군데 하얀 구름이 떠 있고, 초록의 대지엔 마치 흰색 물감으로 점을 찍은 것 같은 양 무리가 고개를 숙인 채 풀을 탐하고 있다. 어릴 적 기억 속 멋진 풍경 사진이 담긴 달력에서 본 듯한 장면이다. 최근엔 시시각각 변신하는 컴퓨터 잠금화면에서 만난 듯도 하다. ‘그림 같은’ 이 장면은 남반구인 호주나 뉴질랜드를 여행한 이라면 한 번쯤 눈앞에서 마주했을 경험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먼 이국 얘기로만 들리는 ‘푸른 들판 위 양 떼 풍경’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부산에서 다녀오기엔 제법 부담되는 거리이긴 하지만, 1988년 문을 연 대관령양떼목장이 대표적이다. 그곳에서는 약 1.3km 길이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양 떼를 관람하고 먹이 주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성인 9000원, 소아 7000원(36개월 미만 무료)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강원도뿐만 아니다. 경기도 가평과 양평군, 전북 고창과 임실군, 전남 화순군, 경북 칠곡군 등 전국 곳곳에 유료로 운영되는 양 떼 목장이 있다. 어린 자녀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기꺼이 달려갈 부모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부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울산과 경남 남해군에도 양을 만날 수 있는 야외 목장이 있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만큼 이미 다녀온 시민이 꽤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부산에서는?

부산 해운대구 석대동 해운대수목원 정문. 초등학교 안전지킴이 초소를 닮았다. 김희돈 기자 부산 해운대구 석대동 해운대수목원 정문. 초등학교 안전지킴이 초소를 닮았다. 김희돈 기자
소박한 해운대수목원 정문을 지나면 커다란 느티나무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 오면 비로소 '해운대수목원'이라는 활자 이름표를 만날 수 있다. 김희돈 기자 소박한 해운대수목원 정문을 지나면 커다란 느티나무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 오면 비로소 '해운대수목원'이라는 활자 이름표를 만날 수 있다. 김희돈 기자

부산에서 풀밭 위를 거니는 양 떼를 만나는 건 진정 꿈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아마도 자녀를 둔 일부 부산 시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 현장을 다녀왔다.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겸손하게 서 있는 정문을 통과했다. 장소 이름이 커다랗게 내걸린 멋진 정문을 생각했는데 약간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초등학교 입구의 안전지킴이 초소처럼 생긴 조그만 ‘안내소’에 고작 관람 전 미리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을 따름이었다. 62만 8275㎡(약 19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 면적을 생각하면 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안내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박한 정문을 지나 몇 걸음 걷다 보니 키다리 느티나무 삼거리에 비로소 ‘해운대수목원’이라는 깔끔한 이름표가 보였다. 수목원에 양 떼 목장이? 의아함을 품고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떼니 곧바로 ‘미니 동물원 200m’라는 막대 이정표가 나왔다. 의심을 거두라는 듯.

겨울나기를 준비하느라 이파리를 들어내기 바쁜 나무들을 감상하며 얼마쯤 걸어가니 축사로 보이는 건물 뒤로 삼삼오오 찍혀 있는 하얀 점들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지그재그 모양의 오르막길로 조성한 월가든을 휘휘 돌아 장미원 앞에 서니 비로소 아래로 펼쳐진 초원의 하얀 점들이 제대로 보였다. 분명 양이었다. 멀리 수목원 경계 밖 산업단지의 잿빛 건물들과 한 프레임에 잡히는 양 떼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어쨌든 ‘부산에서 만나는 초원 위 양 떼’는 실제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이었다.

부산시가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하던 해운대구 석대동 77번지 일원에 조성한 해운대수목원. 1단계 공사를 끝내고 2021년 임시 개방해 무료 운영 중이다. 현재는 내년 말까지 진행될 2단계 공사 완공에 맞춰 새로 운영할 프로그램 개발과 공간 재배치를 준비하고 있다.

수목원 측은 이에 맞춰 미니 동물원을 내년 6월 수목원 중앙의 장미원 뒤쪽으로 옮겨 새로 조성할 방침이다. 이곳에는 현재 어린이놀이원과 가족마당이 있다. 여기에 미니 동물원을 더해 자녀 동반 가족 방문객이나 어린이집, 유치원 단체 방문객이 다양한 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해운대수목원 양 떼가 축사 뒤 언덕에서 무리 지어 먹이를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수목원 경계 너머 산업단지의 잿빛 건물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김희돈 기자 해운대수목원 양 떼가 축사 뒤 언덕에서 무리 지어 먹이를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수목원 경계 너머 산업단지의 잿빛 건물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김희돈 기자
해운대수목원은 양 떼를 축사에 가두지 않고 자연 방사하고 있다. 수목원 방문객이 양 떼와 마주치는 상황이 가능한 이유다. 해운대수목원 제공 해운대수목원은 양 떼를 축사에 가두지 않고 자연 방사하고 있다. 수목원 방문객이 양 떼와 마주치는 상황이 가능한 이유다. 해운대수목원 제공

동물원이라고 하지만, 현재 만날 수 있는 동물은 암컷 양 10마리가 전부다. 이 중 3~4마리가 임신 중이다. 내년 재개장할 동물원에도 새로 태어날 새끼를 포함해 양 13~14마리만 입주하게 된다. 가족 방문객의 발길을 이끌었던 타조와 당나귀는 재배치 계획에 따라 지난 10월 다른 지역 농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를 모르고 방문했다가 아쉬워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기장군에서 온 남수빈(34) 씨도 그런 경우다. 최근 출산한 아내와 둘째를 두고 21개월짜리 첫째만 데리고 왔다는 남 씨는 “수목원에 와서야 타조, 당나귀가 떠나고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 씨는 “평화롭게 풀밭을 거니는 양 떼는 볼 수 있어 그나마 오길 잘했다”며 안도했다.

실제로 수목원 측은 자연 방사 방식으로 양을 키우고 있다. 양들은 아침이면 축사를 벗어나 수목원 구석구석을 누비며 배를 채우다 해지기 전 무리 지어 축사로 돌아온다. 운이 좋으면 양 떼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먹이를 주는 건 금물이지만, 함께 사진을 찍는 행운까지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에는 자연 방사가 힘들 수도 있다. 매주 월요일이던 수목원 휴무일이 화요일로 변경됐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동절기인 내년 2월까지는 오후 5시까지 개방된다. 대중교통 이용이 여전히 불편하다는 점은 아쉽다. 현재 105, 106, 107번 3개 노선 시내버스만 수목원 정문을 경유한다.

해운대수목원 사육 담당 강엽 주무관은 “수목원이라는 정체성을 생각하면 많은 동물을 사육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 아쉽다”면서도 “내년 재개장 때에는 부산 아이들이 숲속에서 양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사상구에서 운영하는 사상근린공원 미니 동물원에도 양 4마리가 있다. 토끼, 염소 등도 있는데, 자연 방사는 하지 않고 우리 안에서만 키우고 있다. 부산시가 운영하는 화명수목원 동물 학습장에서는 거위, 닭, 토끼, 칠면조, 염소를 만날 수 있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