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구덕운동장이 쏘아 올린 작은 공
김성일 혜광고 교사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전국의 마지막 헌책방 골목이자 부산의 미래유산으로 알려진 ‘보수동 책방골목’이 오피스텔 재건축으로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인근 동주여고, 혜광고 학생들은 시민들과 함께 시를 쓰고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포럼을 열었고 이에 감동한 건설사 대표는 극적으로 사업 계획을 철회하고 복합문화공간 ‘아테네학당’을 열어 원도심의 작은 기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또 다른 부산의 미래유산인 ‘구덕운동장’이 난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시민들은 다시 뭉쳤다. 아이들이 뛰어놀 공원을 지키기 위해 주민과 학부모들은 토론회와 집회를 열었고 아파트 건설로 인한 공공재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주민협의회가 만들어져 대대적인 서명운동이 전개됐다.
구덕운동장을 지키기 위해 70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연대했고 서구의회와 부산시의회가 동참했으며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열렸다. 지자체의 의지가 절대적인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 특성상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 불렸지만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은 결국 수용되었다. 논란의 사업 신청은 백지화되었고 원도심의 기적은 다시 한번 탄생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부산 시민 대다수가 공감한 ‘미래유산의 가치’이다. 96년 역사의 구덕운동장은 부산 최초의 공설운동장이자 부산항일학생운동의 발원지로 원도심 스포츠의 메카이자 생활체육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부산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구덕운동장이 진정한 공공 개발로 거듭나려면 ‘미래세대에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유무형의 자산’이라는 부산시 조례의 취지에 맞게 미래세대인 아동·청소년들에게 어떻게 구덕운동장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전승하고 시민 모두를 위한 열린 체육공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구덕운동장 반경 500M 이내에 9곳의 초중고등학교가 위치해 있고 구덕운동장이 인근 학생들의 야외 체육활동장이자 도심의 놀이공간으로 애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미래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1년여 간의 구덕운동장 복합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는 담기지 못했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은 조심스럽지만 구덕운동장 지키기에 한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국토교통부가 최종적으로 부산 시민의 편에 서준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더 반가운 소식은 부산시가 구덕운동장을 위해 마련한 ‘예산’이다. 국토교통부 도시재생혁신지구 공모 사업 신청을 준비하며 시비 250억원이 확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포함한 토건 사업을 위해서는 적은 예산일지 몰라도 미래유산 활성화에 사용된다면 부산에 관련 제도가 도입된 이래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만약 부산시가 대승적 차원에서 구덕운동장에 배정된 예산을 미래세대를 위한 공공 개발에 사용하겠다고 결정만 내려준다면 과밀화된 서구 도심의 주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공원 확충과 더불어 부산 시민 누구나 이용 가능한 문화체육시설 및 아동 놀이시설 확대, 그리고 청소년들을 위한 미래유산 교육의 장은 물론 육상 꿈나무 육성을 위한 경기장 개보수까지 내다볼 수 있다.
이제 구덕운동장 시민운동은 지역 갈등이 아니라 부산의 미담이 되어가고 있다. 연일 우울한 소식과 빠듯한 삶 속에서 구덕운동장 이야기는 시민의 손으로 도시를 바꾸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건넨다. 지금까지의 자발적인 시민 노력에 부산시의 행정까지 더해진다면 구덕운동장은 대한민국 미래유산 역사상 최대의 랜드마크가 될 것임이 자명하다. 남은 것은 부산의 미래를 위한 어른들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