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탈탄소화, 불확실성과 해운산업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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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석 한국해양교통공단 전 이사장

선박 온실가스 국제 합의 지연 업계 혼란
세계 각국 제각각 규제 조치 적용 움직임
재편되는 시장 선점 선사·정부 역할 중요

해운산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산업 중 하나이다. 세계 무역 물동량의 80% 이상이 바닷길을 통해 운송되며, 우리나라는 의존도가 더욱 높아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해운산업이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른바 ‘2D 이슈’로 불리는 탈탄소화(Decarbonization)와 디지털화(Digitalization)가 그것이다.

지난달, 국제해사기구(IMO)에서 두 가지 이슈에 관한 중요한 회의가 잇달아 열렸다. ‘자율운항선박 비강제 국제 기준’이 채택된 반면, ‘선박 온실가스 감축 중기 조치’는 제84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도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 작년 4월,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 규제 틀을 마련했으나, 같은 해 10월 최종 채택이 1년 연기된 바 있다. 미국과 산유국의 반대, 선진국과 개도국 간 비용 분담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연말 재논의가 예정되어 있지만, 합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제 해운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08년 대비 13% 줄었지만 최근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2025년 기준 전 세계 배출량의 약 2%를 차지하고 있다. 당초 예상과 달리 국제적 합의가 지연되면서 선사들은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 합의가 늦어지는 사이 각국과 지역이 저마다의 탄소 규제를 먼저 도입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유럽 항만을 드나드는 선박에 탄소 배출 비용을 부과하는 ‘EU ETS’를 단계적으로 강화해 2024년부터 적용하고 있고, 선박 연료의 탄소 함량을 직접 규제하는 ‘FuelEU Maritime’을 2025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2028년부터 국제 해운 선박에 대해 자체적인 해운 탄소 과금 제도를 도입하며,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도 독자적인 탄소 부과금을 시행하고 있다.

선박은 전 세계 바다를 누벼야 하는데, 최악의 경우 기항하는 항구마다 다른 규제를 따라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마다 기준이 달라질수록 선사들은 항로별로 다른 규제를 파악하고 준수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고, 무엇보다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워진다. 국제 단일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러한 혼선은 앞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우리 해운산업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유럽 항로를 운항하는 선사는 탄소 비용이 해마다 늘어나고, 연료 조달 방식과 계약 구조까지 전반적인 재편이 요구되고 있다. 탄소 규제는 더 이상 환경 부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 전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가 됐다.

시장의 움직임도 이를 반영한다. 클락슨리서치의 올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LNG 운반선을 제외한 전체 신조 선박 발주 중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의 비중은 약 20%로, 2024~2025년 평균 37%에서 크게 줄었다. 규제 방향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사들이 투자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환의 방향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대체 연료 사용을 염두에 둔 ‘레디(Ready)’선 발주는 2021년부터 꾸준히 증가하여 2023년 이후 전체 발주량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연료 효율을 높이는 각종 기술의 탑재 비율도 전체 선대의 47%에 달하며, 배출 가스를 선박에서 직접 포집하는 탄소포집장치(CCS) 설치도 빠르게 늘고 있다.

클락슨리서치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앞으로 24년간 약 4조 5000억 달러의 신조·설비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각국이 제각각 규제를 만들어가는 환경일수록, 선박·연료·항만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적 대응 체계가 현실적인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선사의 입장에서 이러한 국제 환경은 매우 가혹한 상황이며 개별 선사가 통제할 수도 없다. 필자가 접한 선사들의 입장도 다양하다. 중기 조치의 채택 불발로 단기적인 비용 절감을 기대하는 선사도 있는 반면, 국가 또는 지역 단위 규제가 시행되는 항로를 운항하는 선사는 이중 규제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해운 탈탄소화는 ‘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어떤 방식으로’ 올 것인가의 문제다. 선박은 최소 20년 이상을 운용해야 하는 장기 자산이다. 오늘 발주하는 선박이 2050년까지 운항한다는 뜻이고, 지금의 연료 선택이 곧 미래의 규제 리스크를 결정짓는다.

올해 들어서, 정부는 ‘녹색 전환’(K-GX) 추진을 가속화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재편과 녹색전환이 필수적이다. 탄소중립이라는 도전은 분명 부담이지만, 준비된 쪽에는 새로운 시장 질서를 선점할 기회이기도 하다. 기회를 선점할지는 선사의 몫이지만, 선사의 리스크를 줄이고 해운산업 재편을 위한 틀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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