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부산의 심성사(心性史), 그리고 앞으로의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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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 동서대 총장

한 시대 집단적 사고방식 심성사 시선
부산은 개방·수용성, 회복력 지닌 도시
변경이란 인식·의존적 사고 등도 있어
향후 글로벌·친환경·독립 심성이 중요
중앙 결정·지원 기다리는 도시 아니라
의제 만들고 미래 주도하는 ‘부산’ 돼야

심성사(History of Mentalities)라는 개념이 있다. 1930년대 프랑스 아날학파 사학자들이 제시한 역사 연구 방법론으로, 전쟁·정변·조약과 같은 ‘표면을 뒤흔드는 큰 사건’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탐구하는 접근이다. 로마사를 심성사적 관점에서 연구한 모토무라 료지 일본 도쿄대 교수는 “심성사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나 제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의 동력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로마 제국의 장기 지속을 ‘심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시민적 명예와 법 질서에 대한 신뢰, 그리고 피정복민을 포용하는 실용적 태도가 사회 전반에 공유되면서 제국의 안정성을 떠받쳤다는 것이다. 결국 심성사란 한 공동체의 ‘집단적 무의식’을 통해 역사를 읽어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분석의 틀을 부산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부산 사람들은 어떤 정서 속에서 살아왔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자기상(自己像)을 형성해 왔는가.

먼저 주목할 것은 ‘변경의 심성’이다. 조선시대 왜관이 자리했던 부산은 늘 ‘바깥과 마주 선 도시’였다. 이질적인 문화와 문물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었기에 부산은 자연스럽게 개방성을 내면화한 도시로 형성되었다. 그 결과 항구·무역·물류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고, 외국 문화에 대한 높은 수용성과 새로운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유연성 또한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심으로부터의 거리감이 누적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소외의식과 피해의식, 나아가 중앙 의존적 사고가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다음은 ‘환대와 포용의 심성’이다. 약 1000일에 걸친 임시수도 시기 동안 부산은 정부와 유엔, 그리고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을 동시에 품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은 부산을 가장 역동적인 ‘생존형 도시’로 만들어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형성된 사회는 생존과 기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문화를 낳았고, 이는 창업과 서비스 산업의 활력, 그리고 위기 속에서도 빠르게 회복하는 도시의 탄력성으로 이어졌다. 다만 다양한 사람들이 살다 보니 공동체 결속의 약화와 단기 생존 중심 사고라는 한계도 함께 남겼다.

또 하나는 ‘제2도시의 심성’이다. 산업화 시기 국가 경제를 견인했다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심의 국가 구조 속에서 부산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중앙의 지원과 시혜를 기다리는 도시’로 인식해 왔다. 정치인들이 시내 곳곳에 내거는 ‘중앙 예산 확보’ 현수막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씁쓸한 풍경이다. ‘만년 2등’이라는 자기 인식은 어느새 체념처럼 굳어졌다. 이러한 인식은 도전보다는 안정, 주도보다는 추종을 선택하는 경향으로 이어지며 도시의 기개와 상상력을 제약해 왔다.

결국 오늘의 부산은 이 세 가지 심성이 결합해 형성된 도시라 할 수 있다. 개방성과 수용성, 회복력이라는 강점 위에, 중앙 의존적 성향이 함께 얽혀 있는 복합적 도시가 바로 부산이다. 따라서 이 모두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강점은 전략으로, 한계는 의식의 전환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50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심성으로 살아가야 할까. 첫째는 아시아를 ‘리드하겠다’는 글로벌 심성이다. 부산은 더 이상 한반도 동남쪽 끝에 자리한 ‘변경의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태평양과 광활한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거점이다. 이제 부산은 단순히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관적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흐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아시아의 의제를 스스로 설정하고 그 중심에 서겠다는 담대한 기상이 지금의 부산에 요구되고 있다.

둘째는 ‘환대와 포용’의 심성을 자연으로 확장한 ‘친환경의 심성’이다. 산과 바다, 강이 한 도시 안에서 함께 숨 쉬는 곳, 그 자체가 이미 세계적 자산이다. 이제 부산은 친환경이라는 새로운 가치 위에서 부족한 공동체 정신을 다시 세우고, 세계인이 너도나도 살고 싶어 하는 멋진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셋째는 중앙에 기대지 않는 ‘독립의 심성’이다. ‘제2도시’라는 말은 더 이상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한정짓는 언어다. 이제 부산은 그 이름을 내려놓아야 한다. 스스로 길을 정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중앙의 결정과 지원만을 기다리는 도시가 아니라, 스스로 의제를 만들고 미래를 주도하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부산은 ‘의존의 역사’를 과감히 청산하고, 자립과 주도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한다.

지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부산의 다음 50년을 결정짓는 것은 세세한 공약이 아니라, 그 공약을 고르고 밀어붙일 이 도시의 ‘심성’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심성사를 쓸 각오로 이번 선거를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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