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임, ‘컬러 밴드’로 감정과 존재의 흔적을 그리다
OKNP서 5년 만의 개인전 ‘팔림프세스트’
수차례 붓질 반복…시간·기억의 층위 탐구
지난달 23일 부산 OKNP에서 개막한 ‘PALIMPSET(팔림프세스트)_겹쳐진 시간의 층’ 개인전에 참석한 하태임 작가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은영 기자 key66@
색을 쌓는다는 건 마음을 쌓는 일, 하태임 작가는 그렇게 자신만의 색을 담은 띠를 만들어 왔다. 이름하여 ‘컬러 밴드’(색띠) 작업이다. 완성된 그림을 보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 한 줄 한 줄을 그어 나갈 때 어떤 때는 몹시 슬프거나 힘들어서 눈물의 밤을 지새웠을 것이고, 또 어떤 때는 매우 기쁘거나 행복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동안 교단에도 섰던 그가 화가로 돌아와 온전히 색에 자신을 맡겼을 때 알았다고 했다. “색은 단순한 시각의 언어가 아니라 감정의 증언이며 존재의 흔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말했다. “색은 말보다 깊은 위로를 건넸고, 시간보다 오래 남았다”고.
하태임 작가 개인전 ‘PALIMPSET(팔림프세스트)_겹쳐진 시간의 층’ 설치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하태임 작가 개인전 ‘PALIMPSET(팔림프세스트)_겹쳐진 시간의 층’ 설치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회화를 통해 시간과 기억의 층위를 탐구해 온 하태임 작가 개인전 ‘PALIMPSEST(팔림프세스트)_겹쳐진 시간의 층’이 지난달 23일부터 부산 OKNP(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2, 그랜드조선 부산 4층)에서 열리고 있다. 부산에서 5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어선지 오프닝 당일 열린 아티스트 토크에도 많은 이가 관심을 보였다. 최근에는 스프레이를 활용한 배경을 더해 화면의 깊이와 공간감을 한층 확장하는 중이다.
“이번 전시는 70% 정도가 빨간색입니다. 빨간색을 모티프로 잡아서 더 섬세하게 펼쳐 보자 싶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지속한 ‘컬러 밴드’ 작업이지만, 전시 때마다 집중하는 색깔이 있었던 것 같다. 연두색, 노란색, 푸른색, 분홍색을 거쳐 빨간색에 이르렀다. 빨강은 생명과 열정의 상징으로 연결된다.
“제 작업은 마치 기다림의 스펙트럼 같습니다. 한 번 그은 선은 2시간 정도 말린 후 똑같은 붓으로 이전의 붓질 위에 같은 궤도로 칠합니다. 이렇게 수차례 반복된 붓질은 원하는 색감이 나올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열두 번 정도 반복됩니다. 그래서 작품 한 점당 많게는 몇 주, 혹은 몇 달이 걸려 완성됩니다.”
12번의 붓질이 쌓여서 완성한 하나의 밴드인데도 얼른 봐서는 두껍지 않게 여겨지는 것도 그만의 기술이다. 마치 얇은 잠자리 날개를 만들 듯, 시간의 켜들을 쌓듯 투명하고, 여리게, 올리고 또 올린 작업이다. 이처럼 하태임의 작업은 이전의 흔적 위에 덧입혀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지워졌다고 사라진 건 아니고, 화면 어딘가에 남아 있으며 새로운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구조에 대해 홍익대 정연심 교수는 고대 필사본의 방식에서 유래한 ‘팔림프세스트’ 개념을 적용한다. 프랑스 디종 국립미술학교와 보자르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한 하태임은 홍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시는 5월 17일까지.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