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모두의 서재에서, 민주주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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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공간을 담아내는 와이즈먼 영화
고요한 관찰로 완성되는 서사
올해 작고한 거장이 건네는 시선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거장의 카메라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프레더릭 와이즈먼은 느리지만 집요한 시선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기관 혹은 공동체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특히 그는 경찰서와 법원, 병원, 동물원, 학교, 미술관, 복지시설 등 기관의 내부로 파고들었다. 제도의 허점이나 모순을 끄집어내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이러한 접근은 “일반적인 재화와 용역을 누릴 여력이 없는 이들을 조력하는 곳”이라는, 다소 느슨하지만 일관된 기준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무미건조해 보이던 기관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시 읽힌다.

와이즈먼의 영화에는 자막도, 내레이션도, 감정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도 없다. 카메라는 묵묵히 공간의 모든 것을 담아낼 뿐이다. 다소 불친절하고 어쩔 땐 당혹스러운 경험을 안기기도 하지만, 그것이 곧 이 작업을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와이즈먼은 정교한 편집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쓰듯 차곡차곡 서사를 쌓아 올린다. 건물의 간판이 자막을 대신하고, 방과 방을 잇는 복도가 장면 전환의 리듬이 되는 문법에 익숙해지는 순간, 관람은 몰입으로 변모한다. 바로 그 불편함이 관객을 수동적인 구경꾼에서 능동적인 관찰자로 끌어올린다.

이러한 와이즈먼의 탐구가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이다. ‘누군가의 서재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 원제 ‘엑스 리브리스(Ex Libris)’는 그의 카메라 안에서 ‘우리 모두의 서재’라는 공유의 가치로 확장된다. 영화는 20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92개 분관을 유기적으로 잇는 거대한 조직, 도서관이 어떻게 ‘지식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지 기록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신과 과학에 대한 도발적인 강연을 펼치지만, 카메라는 이내 시선을 돌려 도서관 콜센터의 일상을 비춘다. 구텐베르크 성경의 열람 여부를 묻는 전화와 책 예약 방법을 안내하는 담당자는 도킨스의 거창한 담론과 나란히 놓이며 동일한 무게를 갖는다. 지적 탐구와 세속적인 행정이 공존하는 그 자체가 도서관의 본모습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카메라가 비추는 도서관은 더 이상 책을 빌려주는 장소가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되고, 컴퓨터를 배우며, 노숙인들이 쉬어 가는 최후의 공적 보루로서의 풍경이 펼쳐진다. 또한 와이즈먼은 디지털 시대에 책의 존립 여부를 묻는 질문에 성급히 답하는 대신, 엘비스 코스텔로나 패티 스미스 같은 명사들의 강연과 디지털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한 직원들의 치열한 예산 회의를 교차시킨다. 화려한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는 크고 작은 ‘과정’이며, 그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과 정확히 닮아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데워지는 것은, 거장이 건네는 시선이 인간을 향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음에도 수많은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소란스럽지 않음에도 잔상은 오래 남는다. 공간에 대해 그 어떤 것도 공부하지 않은 상태로 그저 ‘관찰’한다는 감독의 고백처럼, 그의 렌즈를 통과하고 나면 무심히 지나쳐온 제도의 풍경과 그 안에서 작동하는 삶의 결이 드러난다.

지난 2월, 60여 년간 카메라로 세상을 응시하던 프레더릭 와이즈먼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남긴 45편의 유산은 이제 한 시대의 작동 방식을 증명하는 거대한 아카이브가 되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영화의전당에서 4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전작 회고전은 평생 기관과 인간, 공동체를 탐구한 그의 세계를 온전히 대면할 마지막 환대의 시간이다. 카메라는 멈췄지만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주었던 도서관의 풍경처럼, 그의 영화는 여전히 우리를 향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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