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랑의 취재海랑] 해수부 이전의 진짜 의미
해양수산부 기자
해양·수산 업계 관계자들의 사무실을 방문하면 한 켠에 붙은 특이한 지도를 마주하곤 한다. 북반구를 아래로, 남반구를 위로 배치한 ‘거꾸로 세계지도’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광활한 태평양이 지도 한복판에 펼쳐져 있다. 2017년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바다의 가능성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배포하기도 했던 이 지도는 해양인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았다.
해수부가 부산에 둥지를 튼 지 4개월, 이 지도는 이제 ‘상징’을 넘어 ‘현실’이 되고 있다. 단순히 청사가 옮겨온 동구 수정동 일대의 유동인구가 늘어난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변화의 신호는 숫자로 먼저 증명됐다. 해수부 이전 직후인 지난 1월, 부산의 신설법인은 452개로 전년 동월 대비 약 28% 증가했다. 특히 정부의 인공지능(AI) 전략과 부산항의 항만·물류 인공지능 전환(AX) 흐름이 맞물리며 정보통신업 법인은 무려 73.9%나 폭증했다. 창업은 경기 회복과 미래 가치의 바로미터다. 부산이라는 엔진에 새로운 연료가 주입되고 있는 것이다.
흩어져 있던 ‘해양력’이 부산으로 집결하며 내는 시너지는 취재 현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미 세계적 수준의 항만 인프라를 갖춘 부산은 창업가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의 땅이다. 동삼해양클러스터의 연구 시설과 보안구역인 부산항 현장이 테스트 베드로 전격 개방되고, 기관들 또한 조직을 재정비하며 이들을 뒷받침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쏟아내는 중이다. 이에 따른 연관효과로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 등 대기업을 포함해, 관련 스타트업 기업들도 부산으로 옮겨오고 있다. 기업이 모이니 자본도 움직인다. 해양 반도체 등 신산업에 특화된 모태펀드가 속속 결성되고 있다.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의 시선도 바뀌었다. 올해 부산 지역 해양·수산 특성화 대학들의 정시 경쟁률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산에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이 학생들의 선택지를 바꿨다.
취재 현장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해수부가 이전한 뒤 진짜 부산이 변했느냐”는 거다. 당장 시민들의 일상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산의 미래에 더해 국가의 체질을 바꿀 거대한 지각변동은 이미 수면 아래에서 꿈틀대고 있다.
독일이 일궈낸 ‘라인강의 기적’ 뒤에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이 있었다. 내륙에 집중된 독일의 공업력을 전 세계 바다로 연결해 준 통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도약이다. 이것이 ‘거꾸로 세계지도’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의 힘이다.
다시 ‘거꾸로 세계지도’를 펼쳐본다. 휴전선에 막혀 외딴섬처럼 갇혀 있던 대한민국이 아닌, 바다라는 무한한 영토로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이 비로소 보인다. 그 거대한 항해의 시작점은, 언제나 그랬듯 부산이 될 것이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