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식의 디지털 광장] AI 파고,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전대식 기자 pr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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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국장

캠코더 들고 시작한 인터넷뉴스부
영상 찍으며 견뎌온 '멀티 저널리즘'
포털 조회수에 목매던 시절 지나
이제는 기사 만드는 생성형 AI까지
AI가 사람을 쓰는지 묻는 시대
결국 '사람과의 연대' 고민해야

2006년 3월의 기억이다. 부산일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터넷뉴스부가 닻을 올렸다. 종이 신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위기감이 신문사마다 팽배하던 시절, 인터넷 뉴스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었다. 마침 미디어 산업의 기술 혁신을 향한 정부의 지원이 맞물렸다. 그 지원금으로 산 것이 소니사의 캠코더 PD170이었다. 흔히 신문기자는 ‘펜 기자’로 불리며 취재수첩을 쥐고 현장을 누빈다. 그 무렵의 기자는 펜 대신 디지털카메라와 묵직한 캠코더를 어깨에 멨다. PD170은 이제 중고 장터에서도 자취를 감춘 유물이 되었지만, 당시 기자에겐 전장을 누비는 군인의 K2 소총과도 같은 존재였다. 기자회견과 선거 유세장, 각종 집회와 스포츠 경기장은 물론이고 금정산의 험한 등산로나 낙동강의 물줄기까지, 말 그대로 산과 들을 종횡무진했다. 동료들이 키보드로 기사를 써 내려갈 때, 영상 편집 프로그램 앞에 앉아 원본 영상을 자르고 붙이며 자막을 입혔다. 조회수나 ‘좋아요’ 같은 숫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었다. 지면의 한계를 벗어나 생생하게 움직이는 동영상 기사는 그 자체로 신문사 안팎에서 주목을 받았다.


3G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교체되던 시기는 또 다른 분기점이었다. 굳이 무거운 PD170을 들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면 고화질 영상을 담아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신문사는 텍스트 기사 외에도 기자들에게 끊임없이 동영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사만 쓰던 기자는 이제 사진도 찍고 영상도 챙겨야 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했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멀티 저널리즘’ 혹은 ‘백팩 저널리즘’이라고 이름표를 붙여 분석하곤 했다. 물리적인 노동 강도는 몇 배로 늘어났고 어깨는 늘 무거웠지만, 미디어 격변기를 헤쳐 나가는 첨병이라는 자부심으로 고단함을 견뎌냈다.

2010년 1월, 멀티뉴스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개별 신문사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두고 방문하던 ‘닷컴 시대’가 저물고, 네이버를 필두로 한 포털의 위세가 나날이 강해지던 때였다. 포털의 검색창 아래에 자사의 기사를 한 줄이라도 더 걸기 위해 언론사들은 이른바 ‘실시간 검색(실검)’ 기사를 쏟아냈다. 매일 아침 기사 트래픽 성과가 사내 게시판에 공지되었고, 기자의 이름은 조회수에 따라 내림차순으로 호명됐다. 지면에 실린 공들인 기사보다 실검 기사의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기자 사회 내부에서도 고민과 갈등이 깊어졌다. 트래픽과 클릭으로 상징되는 ‘포털 저널리즘’은 정통 저널리즘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미디어 업계는 이를 ‘불가항력적인 대세’로 받아들였고, 언론 학계에서는 ‘저널리즘의 위기’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수년간 인터넷·멀티 뉴스 업무를 떠났다가 디지털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포털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관전평과 포털의 기침 한 번에 언론사가 앓아눕는 증세가 공존했다. 그 간극 사이로 유튜브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저널리즘’의 완장을 차고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기술 혁신이라는 파도가 덮칠 때마다 저널리즘은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응전해 왔다. 생존을 위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파고에 무릎 꿇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지금 마주한 AI 저널리즘은 이전의 변화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 AI는 법정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출퇴근도 없으며, 시간외수당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신문기자들만의 안식일인 ‘신문의 날’이나 노동자의 기념일인 ‘노동절’에도 쉬지 않는다. 제목을 뽑고 기사의 뼈대를 잡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취재 아이템까지 제안한다. 언론사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선을 긋고 있지만, AI는 이미 그 선을 넘어 아득히 앞질러 간다.

관망하는 시선 속에 변화의 움직임이 조금씩 곳곳에서 나타난다. AI기술 도입에 따른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깃발을 든 미국 영화 작가와 배우들, 그리고 휴머노이드 로봇의 일방적인 작업 투입을 경계하는 노조의 목소리.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의 도구로 변질된 AI 기술을 비판하며 연대하는 개발자들의 소식 또한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넘어 ‘로봇 칼라’라는 조어가 등장한 지금, 사람이 AI를 쓰는 것이 아니라 AI가 사람을 활용하는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인간 사이의 연대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기자의 체온과 현장의 숨소리 그리고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야말로 저널리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이 노래했듯, 거친 기술의 파고 앞에서도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각자도생의 AI 시대, 다시 인간의 연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전대식 기자 pr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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