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K컬처의 외연 확장과 부산의 과제
오픈 스페이스 배 대표
영도 K팝 아레나 건립 계획에 당혹감
시급한 것은 중복적 하드웨어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 지원 경쟁력 높이는 것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무대를 둘러싼 담론이 뜨겁다. 디지털 플랫폼의 실시간 피드에는 찬사보다 날 선 비판들이 더 날카롭게 박힌다. 과도한 보안 시스템과 경직된 통제가 시민들의 일상적 권리를 침해했다는 항변부터, 한국적 정서에 무지한 해외 연출진이 빚어낸 미학적 패착이라는 지적까지 다양하다. 더욱이 지역 상권이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신기루에 그쳤고, 숙박업계의 기회주의적 폭리는 ‘관광 도시’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소모적 논란의 이면에서 우리가 반드시 포착해야 할 본질적 함의는 따로 있다.
아시다시피 글로벌 OTT 기업 넷플릭스가 보여준 행보는 영리함을 넘어 치밀하다. 이들은 전 세계 팬덤의 시선에 맞추었고 해외 시청자들은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사실 ‘방탄소년단(防彈少年團)’이라는 한자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 그룹의 초기 정체성은 동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전략적 수출 모델’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은 예상을 깨고 서구권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성장했고, 이제는 영어 가사로 세계인의 보편적 감성을 지배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 BTS는 단순한 K팝 그룹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와 어떻게 조우하고 있으며, 글로벌 문화 지형도에서 어느 위치에 점유하고 있는지를 상징하는 ‘연결체’ 그 자체다. 그 상징의 중심부에 국뽕 넘치는 광화문과 아리랑이 자리 잡고 있다. 광화문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하며 ‘K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세계에 각인시킨 성소(聖所)이자 역사의 현장이다.
마셜 맥루언은 일찍이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역설했다. 메시지의 구체적 내용보다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과 매체 자체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회적 관계를 재규정한다는 뜻이다. 넷플릭스가 지난주 ‘데몬 헌터스’가 오스카 두 개를 차지하는 대박 사건과 BTS 생중계를 전 세계 3억 명 이상의 시청자에게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현상은 단순한 공연 중계를 넘어선다. 이는 한국의 특정 장소를 세계적 ‘문화 성지’로 각인시키는 공간적 브랜딩 과정이다. 과거 파리의 에펠탑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미디어를 통해 선망의 대상이 되었듯, 이번 광화문 공연의 전 세계적 노출은 대한민국을 향한 경외심과 방문 욕구를 비약적으로 증폭시킬 것이다. 아미(ARMY)라는 거대 팬덤의 결집과 이동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경제적 낙수효과를 동반할 것임이 자명하다.
이러한 거시적 흐름 속에서 우리는 부산의 현주소를 냉철히 짚어보아야 한다. 최근 부산 원도심과 남포동, 국제시장 일대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니 성공인가? 천만에다. 양적 팽창은 고무적이나, 질적 성숙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현대 관광의 패러다임은 그 지역만의 고유한 ‘속살’, 즉 역사성과 시간성이 응축된 ‘지역성(Locality)’을 탐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연 부산은 원도심의 기억과 이야기를 정교하게 직조하여, 이방인들을 다시 불러들일 만큼 섬세한 미학적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부산의 미래 산업이 해양과 관광에 있다면, 문화는 더 이상 주요 아젠다의 잉여물이나 행사용 수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정한 문화적 정체성은 관(官) 주도의 대규모 토건 사업이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의 창의적 실험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놀이터처럼 펼쳐지는 토양 위에서만 자생한다. 한국 인디 문화를 선도했던 부산의 저력과 BTS 멤버 중 2명이나 속해있는 도시라는 문화적 유전자는 이미 훌륭한 밑거름이다. 부산은 ‘아미’들의 성지순례 코스가 되어 있다
하지만 며칠 전 발표된 영도 폐교 부지의 K팝 아레나 건립 계획은 당혹감을 안겨준다. 목불인견(目不忍見) 수준이다. 이미 북항 재개발 구역 내에도 민간 컨소시엄 주도의 아레나 건립이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불과 6km 남짓한 거리, 물리적으로는 원도심권으로 묶이는 두 지점에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유사한 대형 공연장을 중복 설치하겠다는 발상은 정책적 효율성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선심성 하드웨어 경쟁은 아닌지, 혹은 외형적 성과에만 매몰되어 문화의 내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
요청하건대, 부산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지역 사회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소통의 방식은 부산에는 불가능한가! 지금 부산에 시급한 것은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지역 예술가들의 창의성이 고사하지 않도록 생태계를 조성하고, 시민들의 문화적 인식과 환대(Hospitality)의 온도를 높이는 소프트웨어의 고도화가 우선이다. ‘문화 도시 부산’의 진정한 경쟁력은 아레나의 규모가 아니라, 그 안을 채울 지역적 독창성과 지역 예술가들의 혼과 삶에 달려 있다. 하드웨어가 비대해질수록 소프트웨어가 빈곤해지는 ‘문화적 역설’을 경계해야 함을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