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리랑' NO. 29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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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는 종종 우리 삶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특히 새벽이나 저녁에 사찰이나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한층 묵직하게 다가온다. 소리는 공기의 압축과 팽창이 만들어낸 파동으로 전해지지만 그 울림은 단순한 물리 현상을 넘어설 때도 있다. 요컨대 미국의 독립과 노예제 폐지를 상징하는 자유의 종을 비롯해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종, 영국의 빅벤 등은 시대와 가치를 품은 상징으로 존재해 왔다. 종은 그림 속에서도 울린다. 농민의 삶을 그린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晩鐘)’이 그렇다. 저녁노을이 스러질 무렵, 보이지 않는 종소리에 이끌리듯 밭일을 마친 농부 부부가 허리를 펴고 두 손을 모은다. 지평선 너머 희미하게 드러난 성당의 실루엣은 그 고요한 울림을 더욱 또렷하게 전한다.

한국의 범종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조형미와 소리로 오래전부터 국내외 고미술학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에 국제적으로 ‘한국 종(Korean Bell)’이라는 고유한 명칭까지 얻었다.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은 그 정점을 보여준다. 통상 신라의 범종은 수킬로미터 밖에서도 그 소리가 들릴 정도다. 이는 맥놀이 현상 때문인데, 서로 다른 진동수가 결합하며 강약을 반복해 길고 은은한 여음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음관도 한국 범종의 비밀 중 하나다. 종 상단 용뉴(종의 고리) 부분의 대나무 마디 형태 음관은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전한다. 만파식적은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된다는 전설상의 피리로 이를 불면 모든 풍파(분열·분란·재난)가 잠재워졌다고 한다. 종 아래 울림통 역시 공명을 통해 소리를 더욱 길게 확장한다. 한데 에밀레종은 이 모두를 갖췄다.

그동안 우리는 이 에밀레종 소리를 품고만 있었다.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았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이 3년 9개월 만에 발표한 5집 앨범 ‘아리랑’에 이 종소리가 담겼다. 6번 트랙 ‘NO. 29’는 단 한 번의 타종과 그에 이어지는 긴 여음만으로 1분 38초를 채우며 에밀레종 특유의 맥놀이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여음을 전한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만파식적의 전설처럼 모든 풍파를 잠재우지는 못하더라도 이 종소리가 BTS의 앨범을 통해 세계인의 귀에 닿아 시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전쟁과 갈등 속에서 사라진 이들의 넋을 달래고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조용히 감싸안는 울림으로 번져가기를….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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