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동 에너지 전쟁 장기화 조짐, 백척간두의 한국 경제
수입 막혀 생산 차질인데 미국 '책임' 압박
국제 질서도 혼돈… 국가 위기의식 절실
이란 전쟁 격화에 유가 급등,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1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원/달러 환율과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161.81포인트 내린 5,763.22에 장을 마쳤다. 연합뉴스
이란 사태가 끝내 에너지 전쟁으로 비화해 세계 질서를 흔들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 지도부를 추가로 제거한 데 이어 사우스파르스 가스전까지 폭격하며 레드라인을 넘어섰고, 이란은 카타르의 라스라판 가스 시설을 타격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미국 또한 이란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 점령을 위한 지상군 개입을 예고했다. 에너지 공급망 자체가 전장의 표적이 되면서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에너지 수급 불안이 커지자 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했다. 석유와 가스를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이 가장 원치 않는 상황이다.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닌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엄중한 상황 인식이 급선무다.
중동발 에너지 위기 장기화 조짐에 산업 현장은 초토화되고 있다. 특히 나프타 등 화학 원료는 수입의 60% 이상이 막히면서 재고가 2~3주 수준으로 떨어져 공급 부족과 연쇄 가동 중단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나프타 쇼크’는 플라스틱·섬유·자동차·전자 제품을 비롯해 건설 자재와 타이어 생산 등 전 산업 분야로 파급된다. 원유 수급은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최우선 공급 다짐과 함께 비축유 방출 등 대책을 세우고 있으나 중동 수입선이 끊기면 4월부터 재고로 버티는 상황은 불가피하다. 석유화학산업의 연쇄 효과로 소비재 생산 마비와 물가 상승 우려까지 겹치면서 일각에서 4월 위기설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에너지 위기가 국제 질서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호르무즈 이용국 책임론’을 제기하며 재차 동맹의 참여를 압박했다. 스스로 에너지 안보를 책임지라는 논리다. 반면 이란은 중국 위안화로 결제하는 국가만 안전 통행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페트로 달러’ 체제의 균열을 시도하고 있다. 또 인도 등은 러시아산 원유 확보에 나서며 독자 노선을 걷는다. 에너지 전쟁을 계기로 세계 질서가 혼돈에 빠지는 양상이다. 한국은 중동 수입 의존 구조와 한미 동맹 체제라는 한계에 선택지가 제한돼 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갈림길에 섰다는 각오로 국익 우선의 대응책을 도출해야 한다.
충격은 이미 금융과 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환율은 1500원대로 치솟고 증시는 흔들리고 있다. 고유가와 달러 강세가 겹치면서 물가와 금리를 자극하는 복합 위기 양상이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여지는 좁아지고 스태그플레이션 위험까지 거론된다. 상황은 명확하다. 에너지 문제는 경제 현안의 일부가 아니라 국가 안보 그 자체다. 수입선 다변화와 장기 계약 확대, 전략 비축 체계 재설계, 에너지·산업재 통합 공급망 관리,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가 시급하다. 일시적 유가 상승이라는 안이한 상황 인식은 위험하다. 대응이 늦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한국이 백척간두에 섰다는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