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글라주노프의 색소폰 협주곡을 아시나요?
음악평론가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위키미디어
조희창 음악평론가. 부산일보DB
흔히들 색소폰은 재즈를 위해 만들어진 악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색소폰은 1840년대에 발명되었으며 재즈는 20세기 초에 등장했다. 즉 재즈보다 약 70년 먼저 존재한 악기다. 벨기에의 악기 제작자 아돌프 삭스(Adolphe Sax, 1814~1894)가 목관악기의 유연함과 금관악기의 강한 음량을 합친 악기를 고안하다가 만든 것으로 1846년에 특허가 등록됐다.
여기서 잠깐. 또 하나의 흔한 오해가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니 색소폰을 금관악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색소폰은 재질은 금속이지만 원리는 클라리넷과 동일하다. 클라리넷처럼 마우스피스와 싱글 리드를 사용하는 ‘목관악기’다.
불행히도 색소폰은 현대 오케스트라 편성이 정착된 이후에 발명된 악기라서 오케스트라 체계에 들어가지 못했다. 비록 표준 편성에는 없지만, 여러 작곡가가 특수한 색채를 위해 사용했다. 가령 비제 ‘아를의 여인 모음곡’, 라벨 ‘볼레로’,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 등에서 색소폰이 사용됐다.
마침 내일이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Alexander Glazunov, 1865~1936)의 90번째 기일이기도 하니 그가 남긴 색소폰 협주곡을 소개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원장으로 있던 글라주노프는 1928년에 빈에서 열리는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 위해 러시아를 떠났다. 그러나 행사를 마치고도 귀국하지 않은 채 계속 유럽을 돌아다녔다. 본국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못 돌아간다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정치적 망명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파리 근교에 정착하여 활동하다가 끝내 고국으로 가지 않고 1936년 3월 21일에 세상을 떠났다.
파리에 있을 당시, 글라주노프는 독일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지구르트 라셔로부터 알토 색소폰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는다. 라셔는 색소폰을 클래식 독주 악기로 정착시키려 했던 선구적 연주자였다. 글라주노프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낭만적 선율과 고전적 형식을 결합한 협주곡을 완성한다. 1934년에 완성하여 그해 11월, 스웨덴에서 초연했다. 이상하게도 글라주노프의 1932년작 색소폰 4중주와 색소폰 협주곡의 작품번호가 같은 109번으로 표기되어 있다. 아마도 두 작품 성격이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처리한 듯하다.
약 15분 정도의 단악장으로 된 곡이지만 구조는 4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빠른 제시부를 거쳐 짧은 전개부, 그리고 느린 재현부를 거쳐 푸가토의 결말을 갖는다.
연주자에게 만만한 곡은 아니다. 넓은 음역과 긴 프레이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음악적으로 노래 부를 수 있는 서정성이 중요한 곡이기 때문이다. 색소폰의 시대를 내다본 망명객 글라주노프의 심정과 파리의 정취가 어우러진 명곡이다.
글라주노프 : 색소폰 협주곡 – 발랑틴 미쇼(색소폰), 덴마크 국립심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