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의 타임 아웃] 준우승자의 인터뷰
스포츠부 선임기자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자와 준우승자의 기분은 어떨까요? 심리학적으로 준우승자는 3위를 차지한 선수보다 더 좌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만큼 준우승자의 심정이 생각보다 참담하다는 것이겠죠.
테니스 대회에는 독특한 관례가 있습니다. 메이저 대회 결승전이 끝나면 치열하게 싸웠던 두 선수가 나란히 서서 승리와 패배 소감을 팬들 앞에서 밝히는 것입니다. 다른 종목에서도 패한 팀의 감독이 인터뷰를 하기는 하지만 주로 미디어를 대상으로 합니다. 경기가 끝난 직후 팬들 앞에서 패배의 심정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종목은 거의 없습니다.
얼마 전 끝났던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에서도 그랬는데요. 남자 단식 우승자인 카를로스 알카라스와 준우승을 한 노바크 조코비치가 나란히 서서 팬들 앞에서 심정을 밝혔습니다. 당시 조코비치는 우승한 알카라스에게 “당신은 아직 젊어서 앞으로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나처럼”이라고 농담해 관중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처럼 준우승을 할 기회가 많다는 의미였지요.
조코비치처럼 ‘유머파’만 있는 게 아닙니다. 패배의 아픔을 숨기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여자단식 세계랭킹 1위 아리나 사발렌카는 지난해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코코 고프에게 패한 뒤 “내가 너무 실수를 많이 해서 고프가 이겼다”고 말해 팬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미라 안드레예바는 2023년 호주오픈 주니어 여자 단식 결승에서 패한 뒤 시상식 내내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계속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5년 전 호주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 올랐던 미국의 제니퍼 브레이디는 “결승전 전날 밤에 경기보다는 경기 후 인터뷰 준비에 더 정신이 팔렸다”고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선수들 사이에는 결승 경기보다 준우승 인터뷰가 더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잔인합니다. 평생을 바쳐 노력하고 훈련해왔는데 패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무대에 올라 대회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상대 선수에게 축하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물론 프로 선수들은 팬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메이저 대회 결승전까지 진출한 스타급 선수들을 팬들은 조금 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와 매너가 아닌 선수들의 고통을 즐기는 팬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올해 호주오픈 여자 단식에서 준우승한 사발렌카는 이번 대회 결승에 앞서 “준우승자를 시상식 내내 참석하도록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결승에서 패한 선수에게는 최악의 순간이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을 만큼 그 상황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 준우승자 인터뷰 폐지론에 힘을 실었습니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