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경찰에게 주어진 9개월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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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 사회부 기자

“9개월 동안 우리가 잘해야 ‘검찰 없어도 되겠네’ 소리가 나올 겁니다.”

최근 만난 경찰 수사 부서의 한 경찰관의 표정은 복잡했다. ‘검찰이 해체된 만큼 앞으로 경찰 수사 부서가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수사만 수십 년간 한 그는 9개월을 강조했다. 오는 10월 중대범죄수사청이 들어서기 전 까지 세상은 경찰이 수사를 잘하는지, 어떻게 하는지를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이 없어진 상황에서 9개월 간 경찰이 하는 각종 수사 결과가 향후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결정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검찰청 해체가 확정된 지난해 9월부터 모든 이목이 경찰을 향하고 있다.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연루 의혹이 있는 ‘통일교 게이트’, 쿠팡 개인정보 유출·산업 재해 은폐 사건, 민주당 김병기 의원과 무소속 강선우 의원이 연루된 ‘공천 헌금 사건’,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 3대 특검이 넘긴 사건의 칼자루를 경찰이 쥐고 있다.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베테랑 수사관의 걱정은 기우는 아닌 듯하다. 사건마다 경찰 수사에 대한 아쉬움과 불신이 꼬리표처럼 붙는다. 통일교와 정치권 연루 의혹 수사에서 경찰은 연말부터 연이은 압수수색과 소환 조사로 고강도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확실한 ‘스모킹 건’을 확보하지 못했다. 사건은 검찰과 경찰의 합동수사본부로 넘어갔다.

쿠팡에 대한 수사가 한창인 지난 1일 로저스 대표가 출국한 지 2주가 지나서야 뒤늦게 입국 시 통보 요청을 했다. 고발 단계라 출국 금지가 어려웠지만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출국 금지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인사였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14개 혐의를 받는 김병기 의원 수사에서 경찰은 허점을 드러냈다. 지난 14일 경찰이 김 의원 자택 등 6곳을 압수 수색한 주 목적은 김 의원이 중요 물품을 보관했다던 가로·세로·높이 약 1m 크기의 개인 금고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 핵심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지난해 11월 초 탄원서 접수 후에도 경찰은 정치인이 연루된 주요 사건을 두 달간 배당조차 안 했다. 압수 수색은 배당 후 2주가 지나서 이뤄졌다. 증거를 빼돌리거나 인멸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관련된 3대 특검의 수사도 경찰로 넘어갔지만 경찰이 사건을 받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국회는 2차 특검을 통과시켰다.

믿음을 주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증명이다. 경찰은 10월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기 전 확실히 증명해야 한다. 경찰 내부에서는 중대범죄수사청이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대한 지휘 통제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이 검찰의 시대보다 더 힘 있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늑장 수사, 뒷북 수사, 봐주기 수사 같은 꼬리표를 떼야 한다. 시작은 권력형 범죄에 대한 빈틈 없는 수사가 될 것이다. 9개월의 시간이 경찰에게 주어졌다. 9개월 뒤 ‘검찰 없어도 되겠네’ 이야기가 나올지, ‘역시 검찰이 있어야 돼’가 될지는 경찰 하기에 달렸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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