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지도 평범하지도 않다… 폭력·차별 속 이웃의 ‘진짜 얼굴’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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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작가 4년 만의 두 번째 소설집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 최근 출간


소설집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을 낸 임성용 소설가. 정종회 기자 jjh@ 소설집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을 낸 임성용 소설가. 정종회 기자 jjh@

4년 만에 나온 임성용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한 권을 다 읽었다.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는 말이 제겐 큰 칭찬입니다. 독자에게 술술 잘 읽히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8년 정도 기간제 국어 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수업하는 동안 흥미를 잃지 않고 따라오게 할지가 늘 고민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네요.”

8편의 단편이 실린 이번 소설집은 다른 소설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책 제목에선 ‘다정한 이웃들’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다정하지도, 평범하지도 않다.

표제작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 속 기석은 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자행된 고문과 폭력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는 동네 담벼락의 모든 틈을 시멘트로 메우는 기행을 일삼는다. 그 틈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영혼을 갉아먹는 ‘거미’(고문 기술자)가 기어 나올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다.

첫 번째 소설은 두 번째 소설 ‘두더지’와도 연결된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의 아들인 권 주사는 기석의 기행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기석은 어느 날 권 주사에게 할아버지가 빨치산이었고, 빨갱이 물을 빼기 위해 아버지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결국 거미라고 불리는 고문 기술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한 폭력과 차별도 소설의 주요 소재이다. 학교 폭력으로 세상을 등진 학생, 실종된 딸을 찾아 헤매며 결국 무속적 믿음에 매달리는 부모,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이주민과 약자에게 보낸 혐오의 시선 등이 그렇다. 그는 우리 곁의 가장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진정한 다정함이 무엇인지 묻는다.

임 작가는 “첫 소설집이 나온 이후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았다”며 “소설이 자라는 자리는 언제나 인간이 만들어낸 토양이니, 그 토양을 잘 살필 수 있는 질문을 하자 싶어 ‘니는 어데서 왔노’ ‘지금은 어디에 있노’의 질문이 서사의 골자를 만드는 틀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에는 대화체가 많이 나온다”며 “지역어가 가진 사고의 방식이나 농담의 결, 호흡도 실존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 적극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소설 곳곳에 나오는 부산어의 말맛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소설 속 등장인물에 관해선 ‘왜 굳이 이런 사람들을 소설 전면에 내세우냐’는 질문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임 작가는 스스로를 “나는 그런 영역에 관심이 가는 사람”이라며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시구처럼 “산등성이보다 골짜기에, 가운데보다 구석 자리에 관심이 가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작가 본인이 그늘 속에 살아봤고, 차별적 시선을 경험한 적도 있다. 시골에서 살던 그는 중3 때 혼자 부산에서 자취하며 힘들게 학교에 다녔다. 얼른 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 공고에 입학했다. 3학년 2학기 때 공장에 취업해 종일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일했지만, 손에 쥔 건 60만 원의 월급이었다. 내 인생이 이렇게 가는 건 아니다 싶어 공부를 시작해 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이삿짐 운반, 택배, 벽화 그리기, 건설현장 노동까지 쉬지 않고 일했고, 졸업 후에도 인테리어와 기간제 교사 등 일하는 삶은 이어졌다. 글쓰기에 전념할 수는 없었지만, 펜을 놓을 수도 없었다.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여전히 일을 하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만난 날도 반나절은 공사 보조 일을 하다가 왔다 말할 정도였다.

그가 요즘 관심이 있는 건 생뚱맞게도 ‘김치통 도량형 통일’이다. 임 작가는 “집마다 김치냉장고가 있는데, 제조사마다 김치통 크기가 다르지 않냐”며 “김치 나눔을 하다 보면 뒤섞이기 십상이고, 김치냉장고 내부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그는 ‘김치통 크기를 통일하면 어떨까’ ‘전체주의적 도량형 통일이 낳게 될 부작용은 뭐가 있을까’ 등을 생각한다고 한다.

일상에서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캐내는 임 작가의 다음 소설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현재 그는 한국전쟁 전후 부산에 모여든 여러 군상의 모습을 장편 소설로 쓰고 있는데, 절반 정도 완성된 상태라고 밝혔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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