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산책] 괴로워하는 자기에게 집중할 때 ‘치유’의 시작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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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외면 당한 나의 노력

모친 권유로 가족에 장기 기증
보상심리와 기대, 자연스러운 것

심리적 취약성 발견, 성장의 기회
본인에 중심 둬야 인생 안 흔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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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말 못할 고민에 마음 아픈 이들이 기댈 곳은 실상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마음산책>은 이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내적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줍니다. 올해 초 동아대병원에서 정년퇴임한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가인 김철권 박사는 개인 병원을 열고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회복에 전념하기 하고 있습니다. 이메일(gomin119@busan.com)을 통해 접수된 사연 중 한 건을 선정해 매월 한차례 고민을 풀어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Q. 어머니는 안중에 첫째 뿐이었습니다.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어머니가 저의 진가를 알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가족에게 장기 기증을 권유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랐던 것도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장기 기증한 뒤 가족들은 나몰라라 했습니다. 이유 모를 고통을 호소하면 생색내느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바랐던 가족의 사랑이었건만…. 제가 먼저 가족과 연을 끊었다고 해서 연락조차 없는 그들은, 남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불쑥 치미는 화 때문에 가끔은 일상생활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장기 기증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여전히 후회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이번 사례는 두 가지 매듭으로 꼬여있습니다. 하나는 가족 간의 장기 기증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로부터의 인정 욕망 문제입니다. 가족 간의 장기 기증은 타인 간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심리적 문제를 초래합니다. 가깝고 자주 보기 때문입니다. 기증자는 대부분, 자기 신체 일부를 병든 가족에게 조건 없이 제공함으로써 아픈 가족 구성원이 회복되고 그로 인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 엔딩을 상상합니다. 기증 전에는 가족 모두 기증자의 용기와 희생에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갈등은 대부분 기증자나 수혜자의 건강이 악화될 때 생깁니다. 장기 기증 후 건강이 악화되면 기증자는 자기 보존 본능이 작동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합니다. 마찬가지로 수혜자가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기대했던 만큼 건강이 회복되지 못할 때도 기증자는 괜히 기증했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장기 이식은 기증자의 엄청난 희생을 전제로 성사됩니다. 가족 구성원에게 자기의 장기를 주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기증자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랑은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주는 것입니다. 기증한 후에 기증자의 마음은 사랑에서 욕망으로 바뀝니다. 욕망은 가지는 것입니다. 내 몸의 일부를 주었으니 당신도 그에 맞는 소중한 것을 나에게 달라는 마음이 싹틉니다. 그래서 기증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수혜자와 가족 구성원 모두로부터 보상을 받기를 원합니다. 돈과 같은 물질이든, 아니면 감사와 칭찬과 존경과 고마움의 표시와 같은 비 물질이든 간에 자기 몸의 일부를 내어준 대가를 원합니다. 그것도 계속, 지속적으로 받기를 욕망합니다. 기증자의 보상 심리와 기대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기증자는 후회와 배신감, 우울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입니다. 모든 인간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고 사회는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한 여자에게 ‘어머니’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신성하고 위대합니다. 아무나 ‘어머니’의 이름을 달고 어머니의 자리에 앉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없다면 아기는 태어날 수 없고 태어난 후 생존할 수 없기에 어머니는 아기 생명의 모든 것입니다. 아기는 태어나서 처음에는 자기와 어머니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나인줄 압니다.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아이는 오랜 기간 어머니를 욕망하는 심리적 일체감을 가집니다. 그러다가 사회 규범을 받아들여 비로소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접고 독립합니다. 어머니와 심리적으로 분리된 후에도 ‘어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그 포근함과 안락함과 안정감은 모든 인간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실제 자기 어머니가 그런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어머니’라는 말이 주는 상징성은 변함이 없습니다.

평소에는 아프지 않던 손이 소금물에 넣었을 때 어느 부위가 쓰리고 아프다면 분명 그 부위에 상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사례에서 장기 기증은 삶에서 소금물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인간은 그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 취약성을 발견하게 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기 때문에 장기 기증을 권유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랐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바로 그때가 아이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순간입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치유는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 괴로워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할 때 시작됩니다. 상처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상처는 아물어 삶의 무늬가 되고 당신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중심을 자기 자신에게 두어야 크고 작은 시련에 인생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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