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크리스마스 종전’ 압박… 젤렌스키 “영토 양보 불가”
트럼프, 러시아 협상 우위 강조
동부 돈바스 지역 포기 또 압박
우크라, 나토식 안보 보장 요구
유럽과 협의한 종전안 제시 전망
美 매체 “해결 몇달 걸릴수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이탈리아 총리 조르지아 멜로니가 9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키지궁에서 열린 회담 중 악수를 나누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종전 합의 시한을 성탄절로 제시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럽과 밀착하며 핵심 쟁점인 영토 양보 불가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과 협의를 거친 수정된 종전안을 조만간 미국에 넘길 예정인데, 종전안에는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집단 방위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이견이 여전히 좁혀지지 않으면서 이른 시일 내 합의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9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크리스마스까지 우크라이나 종전 합의를 마무리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연내 종전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사실상 며칠에 불과한 시한을 제시하고, 러시아가 요구하는 동부 돈바스 영토를 포기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안전보장을 약속하겠다는 입장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협상에서 우위에 있는 건 러시아”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걸(미국의 최신 종전안) 읽으면 좋을 것이다. 그의 부관들, 그의 최고위층 사람들도 그걸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는 많은 땅을 차지했다” “러시아가 우위에 있다”며 러시아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종전안 수용까지 가는 길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종전 협상의 핵심인 ‘영토 양보’를 둘러싼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의 종전안은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포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대해 거듭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날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 키이우포스트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온라인 브리핑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NATO·나토 가입에 대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 중심의 우크라이나 지원회의체 ‘의지의 연합’이 나토 가입과 관련한 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는 미국과의 양자 협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는 나토의 제5조와 같다”며 우크라이나 정부 관리들이 몇 주 내로 주요 세부 사항을 명확히 밝힐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나토 조약 제5조는 나토 회원국 중 한 국가가 공격받으면 다른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무력 사용 등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다는 집단 방위 원칙을 규정한 조문을 의미한다.
이 같은 수정안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푸틴 대통령은 나토의 동쪽 세력 확장을 전쟁의 원인으로 내세우며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축소를 타협 불가 조건으로 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국 우선주의 기조하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며 유럽에 안보 지원을 떠넘기는 방안을 추진했다.
WSJ은 종전안 수정에도 여러 쟁점이 있다고 미국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평화 계획의 목적으로 러시아에 어느 영토를 넘겨줄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수 있을지 등이 걸림돌로 거론됐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종전안 초안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조항이 있었으나 현재 이 내용이 삭제됐고 새 버전에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미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의 이견이 연내에 좁혀지기엔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