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해열제 품절, 도매업체 물량 확보 경쟁 탓?
지난해 공급중단 의약품만 658개
유통구조 불투명해 편법행위 빈번
정부 물량 파악·생산 지원 필요
감기약, 해열제 등 자주 쓰는 주요 의약품의 품절 사태가 반복되면서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나온다. 여러 안내문이 부착된 한 약국 모습. 연합뉴스
감기약, 해열제 등 자주 쓰는 주요 의약품의 품절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업계에선 의약품 유통구조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지아(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공급 등 합의서 이행관리 품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공급중단·품절 발생 신고접수 의약품은 658개에 달했다. 2022년(2개), 2023년(29개)에 비하면 폭증한 수준이다.
공급중단·품절 발생 신고접수 의무가 있는 ‘공단 공급 모니터링 의약품’이 2022년 2423개, 2023년 1만 4821개, 2024년 1만 8962개로 늘어나면서 모니터링 의약품 대비 공급 중단·품절 발생 신고접수 의약품 비율도 2022년 0.08%, 2023년 0.2%에서 지난해 3.5%로 급증했다. 지난해 신고 접수된 의약품 658개 가운데 31개는 공단에 미리 신고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품절 사태의 원인으로 국내 전문·일반의약품 도매 업체 난립을 꼽는다. 실제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집계된 지난해 국내 의약품 도매 업체 수는 3999곳으로, 10년 전인 2014년(1966곳)보다 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의약품 제조소(316곳)에 비해선 10배를 훌쩍 넘는 규모다. 도매업체 상당수가 경쟁적으로 재고 확보에 나서면서 약국이나 환자들에게 의약품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중소 도매업체가 대부분이어서 실시간 재고 현황 관리나 배송 추적 같은 선진 유통 시스템 도입을 위한 투자가 어려운 것도 걸림돌이다. 이 같은 불투명한 유통 구조로 인해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해야 품절약을 제공하거나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의약품을 강매하는 ‘끼워팔기’ 등의 편법 행위가 빈번한 점도 한몫한다. 실제 지난 5월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계열 비만치료제 삭센다 수량이 부족해지자 한 유통업체에서 상대적으로 재고가 넉넉한 위고비를 끼워팔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약품 공급 부족 상황에 대한 정부의 파악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 공단 공급 모니터링 의약품은 국민건강보험법이나 보건복지부 고시 등에 명시되지 않아 법적 근거가 빈약한 상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올해 바로팜 플랫폼에 등록된 의약품 도매업체에서 주문이 불가능한 72개 의약품 중 상반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신고된 수급 불안 품목은 10%(7개) 수준에 그쳤고 제약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공급부족 신고한 품목은 2개에 불과했다.
제약업체들의 생산량 조절도 원인이 된다. 특히 소아용 의약품의 경우 소아 인구 감소에 따라 제약사들이 경비 절감 등을 위해 생산량을 전반적으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의사가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을 써서 처방해주는 ‘성분명 처방’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부산시약사회 변정석 회장은 “주요 의약품 품절 사태는 유통구조, 정부 정책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며 “품절 되는 주요 의약품을 대체할 수 있는 성분명 처방을 도입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