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AI 시대, 인간의 역할은?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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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 경제부 차장

지난 10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글로벌 ITC 행사 ‘자이텍스 글로벌(GITEX Global) 2025’는 인공지능(AI)의 거대한 물결로 굽이쳤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시스코, 화웨이 등 내로라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그들의 AI 기술과 데이터센터 역량을 자랑했다.

심지어 기자는 구글 전시 부스에서 언론인 맞춤형 AI도 소개 받았다. 그곳의 구글 직원은 자사의 AI 프로그램 중 하나를 시연하며 취재와 기사 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와 아부다비 기반 AI 기업 G42 그룹의 펑 샤오 CEO는 화상으로 만나 AI가 바꿔갈 미래 변화를 대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대화 중 펑 CEO는 오픈AI의 챗GPT가 UAE에서 사용된 재미있는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UAE의 셰이크 타흐눈 빈 자이드 알 나흐얀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의 새 자택을 짓는데 AI를 활용했다. 챗GPT 도움을 받아 전문가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건축 설계를 직접했다는 것이다. 챗GPT에 500번 이상의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랐지만, 설계 비용 절약을 고려한다면 그 정도 수고는 분명 가치 있을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이 대담을 듣고 있던 기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 미래에 없어질 직업, 건축가 하나 추가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한 남성이 AI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 ‘그녀(Her)’를 시청했다. 2013년 작품이지만 이야기가 2025년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현실과 묘하게 포개지는 지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컴컴한 기내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기자는 또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인간관계도 AI가 대체하는 시대가 오는 건가. AI 아내나 여자친구라면 잔소리도 없겠지.’ 한참 선 넘은 생각이었다. 아내가 이 글을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전대미문의 AI 시대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전망하는 보고서가 속속 나오고 있다.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노동의 변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10월 발표한 ‘AI와 한국 노동시장’ 보고서는 한국 기업의 AI 도입률이 OECD 평균(50.8%)보다 낮은 30%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AI가 노동 시장에도 큰 변화를 불러오겠지만, 대규모 실업보다는 직무 전환과 기술 수요 변화를 점쳤다.

인간 관계에도 거대한 변화가 예고됐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미디어랩의 올해 연구 ‘내 남자친구는 AI’는 AI 챗봇과의 감정적 관계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분석한 것이다. MIT 미디어랩은 AI 동반자가 외로움 감소와 정신건강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진단하면서도, 감정 의존성과 현실 해리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올해 자이텍스를 취재하는 동안 기자의 머릿속을 맴돈 질문은 단 하나였다. AI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어쩌면 그 질문을 이어가는 일 자체가 인간다움을 지키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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