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맨땅에 헤딩… 후배들, 더 편하게 좋은 연구 이어갔으면” [71%의 신세계, 해저시대로]
KIOST 한택희 박사
국내 1호 해저 기지 연구자
23개 참여 기관 조율 총괄
한택희 KIOST 책임연구원이 '한국형 해저기지' 모형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이대진 기자
지난달 25일 부산 영도구 동삼동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제2연구동. ‘해저공간 창출 및 활용기술개발 사업’을 총괄하는 한택희 박사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우주선’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곧 제작에 돌입하는 한국형 해저 기지의 축소본이다. 한 박사는 이 해저 기지 완성을 위해 2022년부터 밤낮을 씨름하고 있다. 그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일 뿐”이라고 했지만 눈길에서 애정이 묻어났다.
국내 1호 해저 기지 연구자이자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해저도시 전문가. 하지만 의외로 한 박사는 한 우물만 판 과학자가 아니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는 건설회사를 다니다 IMF 외환위기 때 사표를 던지고 대학원으로 향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 연구소에 입사했다가 다시 KIOST(당시 한국해양연구원) 연구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로소 바다와의 만남이 시작된 순간이다.
해저도시 연구도 우연찮게 시작됐다. 한 박사는 “오래전 선배 연구원이 ‘이런 거 해 보면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주셔서 2012년도에 기획보고서를 만들었다”며 “당시에는 기술원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이게 무슨 황당한 얘기냐’는 반응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서랍 속에서 잠자던 연구 과제는 수년 뒤 해양수산부 신사업 발굴 과정에서 뒤늦게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22년 4월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고, 이후 쉴새 없이 회의가 이어졌다. 한 박사는 “보통 R&D(연구·개발) 사업은 4~5개 기관 정도가 참여하는데 이번처럼 23개 기관이 대거 참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5그룹으로 나눠 월 1회씩, 총괄하는 저희는 매주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KIOST에서는 한 박사를 포함해 5명이 이번 프로젝트를 전담한다.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인원까지 더하면 30명이 넘는다.
여러 기관의 의견을 중간에서 조율하는 일도 힘들지만 더 큰 문제는 예산이었다. 한 박사는 “매년 예산 심의를 하는 과정에서 처음 계획했던 사업비가 줄어드는 데다 물가 상승률도 반영이 안 돼, 결국 예산이 부족해진다”며 국내 R&D 사업의 공통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당초 2026년 완료 예정이던 이번 사업도 1년 가량 늦춰졌다. 코로나19 이후 건설비가 훌쩍 뛰어 예산에 맞춰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기초 플랫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설치 지점을 암반 지대로 옮겼고, 해저 기지 모습도 달라졌다.
2027년 해저 기지가 무사히 계획 지점에 들어서더라도 이후 운영은 별개 사안이라, 한 박사는 벌써부터 운영비 확보를 고민하고 있다.
흘러가는 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공교롭게도 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왔다는 한 박사. 그는 “처음에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맨땅에 헤딩’이어서 힘들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새로운 성과가 나오기 때문에 만족감이 크다”며 “해저 분야는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후배 연구자들은 좀 더 편한 환경에서 좋은 연구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