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소리에 유럽이 감동"…작곡가 박영희, 독일 최고연방훈장 받았다
독일 브레멘 시청홀에서 29일 ‘연방공로십자훈장 1등급 서훈식
부산시향 지난 9월 독일 순회공연…베를린·뮌헨에서 잇따라 연주
서울대 작곡과 졸업 후 1974년 독일로 떠나 독창적 음악세계 구축
안드레아스 보벨슐트 독일 브레멘 시장이 29일(현지 시간) 브레멘 시청에서 작곡가 박영희 선생에게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대신해 '공로십자훈장 1등급'을 수여하고 있다. 온 아티스트(독일 음악기획사) 제공
유럽 현대 음악계의 거장 박영희(80) 작곡가가 29일(현지시간) 독일 연방정부가 수여하는 ‘연방공로십자훈장 1등급(Bundesverdienstkreuz 1. Klasse)’을 받았다. 동양 전통음악의 정서를 서양 현대음악과 결합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안드레아스 보벤슐트 독일 브레멘 시장은 이날 브레멘 시청홀에서 독일연방대통령을 대신해 박 선생에게 훈장을 전수했다. 연방공로십자훈장은 독일이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공공의 이익에 뚜렷한 기여를 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국가 최고 영예의 서훈 체계로 박 선생은 작곡가로는 드물게 1등급 수훈자로 선정됐다.
재독작곡가 박영희 선생. 온 아티스트(독일 음악기획사) 제공
1945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박 선생은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1974년 독일 국립 프라이부르크 음대로 유학을 떠나 작곡가 클라우스 후버(Klaus Huber) 문하에서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후 50년 넘게 유럽 현대음악계 한복판에서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한국의 소리와 감정, 역사와 신앙을 ‘서양의 악보’ 위에 올리는 작업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1980년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현대음악 축제인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에서 첫 관현악곡 ‘소리’가 위촉·초연되며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축제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여성 작곡가 위촉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기도 했다.
독일 예술원 정회원(2009년), 독일 작곡가협회가 수여하는 FEM 나델상 수상(2018년) 등으로 주목받았으며, 2020년에는 베를린 예술대상 음악부문에서 최초의 여성·최초의 동양인 수상자로 선정됐다. 또 20여 년간 독일 브레멘 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재독작곡가 박영희 선생이 2025년 9월 2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베를린필하모닉홀에서 열린 부산시립교향악단의 '무직페스트 베를린' 폐막공연에서 자신의 작품이 연주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박석호 기자
부산시립교향악단은 지난 9월 유럽의 대표적 음악축제인 베를린 무직페스트(Musikfest Berlin)와 뮌헨 뮤지카 비바(Musica Viva)에서 박 선생의 대표작을 잇따라 연주했다. 특히 휠체어를 타고 베를린 공연에 참석한 박 선생에 대해 1900여 관객 전원이 기립 박수를 보내 감동을 자아냈으며, 독일 공영 라디오방송인 도이치란트풍크 쿨투어(Deutschlandfunk Kultur)가 이날 공연을 실황 녹음해 독일 전역에 송출했다.
박 선생은 이날 수상소감을 통해 “국경이나 구분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막지 못하게 하고, 문화의 교류를 통해 관계를 더욱 단단히 해야 한다”며 “예술은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다. 서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공동체를 이루려는 젊은 세대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