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동남권투자공사 추진은 고래와 멸치 바꾸는 것"
이재명 정부 공사 쪽 가닥… 지역 반발 거세
'큰 손' 역할 한계, 은행 설립 방안 재검토를
동남권투자공사가 부산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정부가 부산 대선 공약이던 동남권투자은행 대신 투자공사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지역의 반발이 거세졌다. 박형준 부산시장의 강력한 비판과 함께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도 대정부질문에서 문제를 제기할 정도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산업은행 이전이 어렵다면 투자은행으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은행이 아닌 공사를 내놓았다. 공사 형태는 수신 기능이 없어 자금 조달력이 떨어지고 대규모 투자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는 명백한 공약 후퇴로 부산을 ‘달래기용’으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부산은 수십 년간 국제금융중심도시라는 이름값을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핵심에 있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정책금융기관의 실질적 이전이었다. 산은이든 투자은행이든, 지역 경제를 떠받칠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데 정부가 내놓은 투자공사는 자본금이 3조 원에 불과한 데다 수신 기능조차 없어 자금 동원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역 산업을 이끌 ‘큰 손’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적자와 비효율의 위험을 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뻔한 한계를 알면서도 정부가 공사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부산시장이 “고래와 멸치를 바꾸는 격”이라고 일갈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은행은 수신 기능을 바탕으로 민간 자금을 폭넓게 끌어들이고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안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정책금융기관이다. 반면 투자공사는 제한된 자본으로 채권 발행 등에 의존해야 하기에 운용 효율성이 떨어지고 적자 위험까지 안고 있다. 정책금융 기능도 미약해 지역 산업 구조 전환이나 신산업 육성에서 ‘메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마치 대체재인 양 포장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금융기관 하나를 둘러싼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은 이전 철회와 투자공사 설립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중대한 과제이자, 지역민과 맺은 정치적 약속을 정면으로 저버리는 행위다.
정부는 투자공사 추진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부산 시민이 왜 산은 이전을 요구해 왔는지 그 근본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 산은 부산 이전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도권 과밀을 완화하고 부산을 제2의 금융중심지로 육성해 남부권 경제를 살리겠다는 분명한 비전이었다. 지역이 바라는 것은 ‘반쪽짜리 공사’가 아니라 국가균형발전을 뒷받침할 실질적 금융 기반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공사’ 추진을 접고 ‘은행’ 설립 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논란은 단순한 정책 갈등을 넘어 정치적 심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