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세 개의 벽'에 막힌 부산 블록체인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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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 경제부 차장

부산은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6년째 달려오고 있다. 다시 말하면 부산은 블록체인 기술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거대한 ‘테스트베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부산의 물류·금융·공공안전·관광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실증 사업이 진행돼 왔다. 블록체인기술혁신지원센터 설립을 통해 기업 인프라 지원·네트워킹·맞춤형 컨설팅 등을 제공하며 지역·외부 기업의 성장과 기술혁신을 견인한 성과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본보 기획시리즈 ‘블록체인 DNA 심는 첨병들’ 취재차 만난 여러 기업 관계자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던 이유다. 이들은 하나같이 제도적 한계와 인력난, 투자유치의 장벽을 기자에게 토로했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부산의 블록체인 산업을 키우기 위해 마련된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가 지역 기업의 확장을 가로막는 경우였다. 특구 내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을 운영 중인 한 회사가 이 점을 지적했다. 특구 사업이 부산에만 묶여 있다 보니 전국 단위의 사업 확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특구 사업을 2년 실증하고 3년 임시허가까지 연장했지만 ‘부산 한정’ 조건 때문에 다른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보다 불리한 여건에서 경쟁한다”며 “부산에서는 상업용 건물 공실률이 40%를 넘는 상황에서 좋은 물건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제도 미비에 있다. 국회는 토큰증권발행(STO) 법안을 곧 통과시킬 듯 말만 반복하며 업계에 ‘희망고문’만 안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인력난은 또 다른 벽이다. 블록체인과 AI, 데이터 전문 인력은 대부분 수도권으로 흡수되고 지방 기업들은 구인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발과 기획, 영업을 CEO 1인이 챙길 수밖에 없다. 인력 부족은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추고 결국 사업의 성장 잠재력마저 떨어뜨린다.

항만·물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인력 확보가 가장 큰 과제다. 부산은 수도권보다 중간급 인력이 훨씬 부족해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며 “투자 없이 매출만으로 회사를 키우고 있어 인력 확충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술을 확보하고도 시장 확장을 위한 자본 유치도 지역 업체들이 넘어야할 허들이다. 사업 초기에는 정부 과제나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버텼지만, 민간 투자로 이어지지 않아 성장 속도가 더디다. “지역에서 기업설명회(IR)를 100번이나 했어도 투자받지 못했다”는 한 CEO의 절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결국 기업들은 자체 매출과 제한된 공공 투자에 의존하며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걱정만 할 때는 아니다. 정부와 국회, 지자체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정책과 지원에 반영할 때 비로소 부산은 성공적인 블록체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이들 벽을 넘어선다면 부산의 블록체인 산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잠재력을 충분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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